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아마도 오래된 기사일 듯싶다.
언론매체 뉴스를 보고 놀랐다. 미국의 한 북아메리카 매사추세츠에서 어느 장관의 집 앞에 엄청 눈이 내렸는데도 눈을 치우지 않았다고 벌금을 냈다.라고 하는 뉴스를 보았다.
매우 신선하고 역시 자유주의 미국이구나. 하고 중얼거림으로 자소(自訴) 하면서 역시나 했다.
벌금이 많고 작고가 문제가 아니라 역시 선진국인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나라를 대비해 보았다. 우리 기준으로 볼 때 벌금까지는 의문이 당연하다. 기꺼이 벌금을 내고 이것이 마지막 폭풍이기를 바란다는 성명서는 정말 부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사실 당연한 기사인데 왜 지면을 할애하는지 우리는 먼 거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 신호 위반의 기사도 곁들여 소개하는 것을 보면 높은 직책의 장관이라도 법을 위반하면 당연하게 벌금을 내는 것이 합당하다는 사례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힘이 이런 작은 곳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의 상식에도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지도자의 솔선수범이 법을 유지하는 길이 된다는 엄정성에서 박수가 나온다. 반면에 한국을 보자. 우리 국회나 장관들 또는 정치인, 늘 검증의 단골 메뉴인 부동산 투기 의혹, 주식 의혹, 등 커다란 활자로 도배된 것과 비교한다면 씁쓸한 쓴맛만 입안을 헹군다.
나라의 위대한 힘은 지도자의 솔선수범이 앞장설 때 국력이 배가될 국력이 될 것이고 백성은 이를 따르는 순종의 길이 당연함으로 질서를 잡게 될 것이다. 고대 플라톤의 <공화국>은 지도자에 의해 완전한 통제와 엄명이 횡행하는 공산화였지만 결코 유토피아 국가는 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독재국가의 말로는 결코 이상 국가가 될 수 없는 먼 상상의 공간일 뿐인데 말이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고 상식을 떠들어 대고 공평을 소리치고 천만번을 소리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솔선수범의 행동 한번 효과에 따르지 못하는 일은 우리 역사 속의 활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국가의 위기 때는 백성들의 자발적인 솔선수범으로 위기를 돌파한 사례-
문민 대통령 시절 국가 부도 사태 <imf> dp 직면할 때 금 모으기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한 서민들의 힘을 과시한 우리의 국민이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들의 미담은 없고-
지금 입법, 사법의 예를 들어 보자?
지금 이것이 정상적인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국민은 모두가 알고 있다.
무조건 정권만 잡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 같은 눈먼 권력 욕심에 나라는 안중에도 없고 반대만 일삼는 입법 독재, 그리고 사법 모두 왼쪽으로 편향되어 대통령을 무자비로 끌어내리려는 세력은 도대체 어느 나라 정치가인가?
법을 무시하고 국민을 개, 돼지로 아는 입법, 사법, 모두 퇴출, 되기를 희망의 기대가 있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렇게 되겠는지 암울하기만 하다.
돌아보자. 훗날 정당한 권력이 부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를 지키는 사람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묻는다.
지키면서 정당한 의사표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탈법과 거짓말로 일상화하면서 이를 자기변명으로 정당화하는 지금까지의 대다수의, 정치가들을 무시하는 이유는 모두가 자기변명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국회의원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일도 아니다. 마지막 최후까지 법을 지키는 금도(襟度)가 있을 때 자유민주주의 본령에 이르는 것이지 수단을 합리화하는 일은 지도자가 아닐 것이다.
백성의 모범이 되는 정치가?
헌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이라는 위정자, 깨끗함이 곧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순수함의 정치가의 덕목이지만 철없는 시절에 불과한 불법과 탈법을 모두 당대의 정치가 잘못이기 때문에 이를 타도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꾼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지조 없음을 넘어 거짓말 행진으로 근근 지탱하는 나라의 운명이 걱정이다.
때문에 망해야 할 패륜집단, 북한이 존립의 근거를 가지고 있음이나, 이를 따르는 종북, 친북, 세력들이 횡행하는 작금의 처지도 따지고 보면 남한의 거짓 정치가들의 이용에 놀아나는 일이
상당수라 이런 추세를 사상이 없는 현상 즉 정신적 가치가 없어서라고 할 수 있겠다.
정신의 줄이 있어야 함에도 그것이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그네 현상만 있고 이를 막지 못하는 양심의 마비가 진행형이라는 것.
이제는 경찰이나 검찰의 말도 신뢰를 일탈(逸脫)했다는 점에서 무지한 여론의 지배적인 풍미와 부정선거라는 막무가내 딱지를 붙이고 선거관리 위원회가 마비된 것은 사실일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북한의 어긋난 추종 세력을 꾸짖지 못하는 일도 참으로 우리 사회가 언제 이렇게 사회주의가 되어버렸는지?
그 옛날 운동권들이 국회에 들어와 주인이라 행세하는 정치관이 무슨 미래를 가질 수 있고 억지와 거짓의 횅행이 당연으로 나타나는 국가의 정의가 있다고 하는 것인지 오죽하면 계엄이 계몽령이 되어 버렸는지 알 수 있겠다.
후안무치한 이 철없는 자들의 정의와 민주를 역설하는 입을 보면 자유민주주의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마치 뼈 없는 입법, 사법, 모두 목청 큰 자들의 세상이고 정치판은 데모와 탈법, 이념 주의자들에 의해 지배하고 있는 한 희망의 불을 켜는 일은 사실 절망이지만-
절망에서 희망은 싹이 나온다는데 믿음을 가지며 팩트로 확인되는 미국에서 중국 간첩을 잡아 조사 과정이 끝났다는 데에 한가닥 희망을 보는 것이다..
국민은 단순하다. 작은 것 쉽게 감동하고 쉽게 동화되는 길은 늘 넓혀있다. 이 단순한 일을 작은 욕심으로 간과하는 일들은 결국에는 정신의 문제로 돌일 일이다.
국가는 국민에게 간섭과 거짓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의 가치 정신이 발현하는 것이다.
통제와 간섭은 꾀를 발동시키고 마침내 서로가 대결하거나 회피의 길이 넓어질 때 지도자의 위신은 추락하는 것이다.
국민이 지도자를 신뢰하지 못할 때, 법이 그물을 펴고 백성의 발목을 잡기 위해 더 많은 그물을 펴는 일은 가장 어리석은 노릇일 것이다.
지도자는 일시적인 선택일 뿐이지 권력을 항구적으로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용기를 갖는 일은 큰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성과조차 아래로 내려보내는 겸손이 필요하다는 것이 진리일 것이다.
물길을 내는 사람이 지도자요 앞을 바라보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정작 이를 시행하는 몫은 아래로 물려주는 책임 정신이 요망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도자는 왜 미국의 지도자들과 다를까?
이 간명한 대답은 권위를 지키려는 유교 정신이 바닥에 깔려 있음이 아닐까?
선택받은 지위는 영원성이 아니고 일시적인 존재라는 가져야 함에도 자기는 높은 사람이라는 은근한 권위의 의상이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당신들과는 다르다.라는 차별성이 결국은 스스로를 함정에 빠트리는 잘못이 된다.
이 간단한 대답을 실천하는 일은 자각증상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서방의 선진국 지도자들의 사례를 모르거나 망각되어서가 아니다.
선민의식을 타파하는 개혁의 정신이 필요하지만 정작 자기를 예외 조항으로 남겨두려는 우월성의 마음이 자기를 망하게 하는 동력이라면 결국 이 검은 그림자는 국민의 몫으로 분배받을 때 우울한 공화국이 된다.
지도자의 행동이 거울로 투명해질 때라야 백성은 따라가는 길이 밝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만드는 첩경이라는 말에 타당성을 갖는 이유라고 굳게 믿으며 이상한 진리가 아니기를 바라며 에필로그 한다.
2025. 02.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