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조화의 꿈 만들기]

    1. 프롤로그 –시의 기도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5-04-03 09:17:38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시는 마음의 거울로 출발한다.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시인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아름다움과 고통, 아픔 또는 그리움과 사랑의 목록들이 독자의 심금을 울리고 자극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슴을 적시는 파문의 물살이 되기도 하며 더러는 가을 하늘 같은 투명하고 환한 미감(美感)으로 오감을 움직이게 된다.

    이런 경우 시인은 단순히 언어의 조합을 지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인 자신이 언어의 중심이 되는 화학적 변화를 나타내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다시 말하면 사물과 사물의 이미지가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제3의 이미지로 변모할 때. 시의 맛은 환상적인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실 시인 개인 성향에 따라 개성의 표현이 부드러운 개성의 시적 묘미가 있는가 하면. 딱딱하고 견고한 표정으로 오는 경우가 있다.

    어느 것이든 시의 발성은 희망과 꿈 그리고 사랑의 체온이 담겨질 때, 비로소 시의 가치는 상승의 효과를 기대하게 된다.

    이준영의 시는 부드러움과 상상의 깊이가 출렁이는 인상으로 출발한다. 언어의 감각, 예민한 촉수로 이미지의 사냥에서 건져 올린 언어의 싱싱함이 매우 리얼하다. 그러나 쉽게 다가오는 이미지가 아니라 찾아가는 노력이 배가 될 때, 더욱 빛나는 표정으로 살아난다는 점에서는 발길을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는 heart의 시가 아니라 head에서 심사숙고가 있어야 한다는 점과 같다.

     

    2. 언어의 실마리 찾기

     

    1) 시작(詩作) 문법

     

    시인마다 시를 대면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다. 직핍(直逼)의 방법으로 이미지를 구사하는 시인이 있듯이 비유의 패각(貝殼)으로 단단히 무장하여 시적 의미를 발굴하는 시인이 있을 수도 있다.

    어느 방법이든 개성에 따라 작시의 태도는 달라지고 이에 대응하여 시의 성격도 다르게 다가온다. 이준영 경우에 보다 더욱 치밀한 언어의 운용에 따른 비유의 현란성을 부가할 것 같다.

    이는 시의 성숙에 이르는 표현미를 수반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머리((head)에서 생각의 농도를 높여야 한다. 마치 T.S. ELIOT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치듯 지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는데도 많이 씹을수록 단맛을 음미할 수 있는 것처럼 방법과 시의 맛도 같다는 의미이다. 이제 그의 시를 따라가 본다.

     

    서해 파도가 옆구리를 찔러 간질이는

    늘 겨드랑이 가려운 궁평항

    혹시 가본 적 있나요.

     

    ...중략...

     

    싱싱한 생굴에 궁평항

    통고추를 갈아서 버무린 짭짤한

    파란 궁평항을 몽땅 담아 맛을 낸, 그것

    뜨거운 밥 위에 한 젓가락 빨갛게 올려

    입 크게 벌려 씹다가 한 젓가락씩 먹는 것이 감질나

    굴 젓 한 숟가락 푹 퍼넣고 따끈한 밥 한 그릇에

    쓱쓱 비벼 먹다 보면 어느새 바다 내음이

    입안 그득히 퍼지는 봄

     

    - 궁평항의 봄

     

    매우 감각적인 뉘앙스를 접하는 시이다.

    신선감과 감각성을 주는 이유는 언어의 사용에 탄력적인 기교 그리고 리얼리터의 이미지가 부수적인 효과를 수반하면서 봄의 미각을 자극하는 방법이 매우 생동감 넘치는 인상을 가져온다. 싱싱한 굴 맛을 나타내기 위해서 서해의 파도가 옆구리를 간지리는묘사에서 궁평항의 바다가 푸른 감수성을 자극하는 인상이며 시의 사실성에 일조를 더하고 더불어 봄의 기운이 온몸으로 다가오는 생동감을 느낄 때, 봄의 정서가 궁평항의 역동적인 상징으로 발길을 맞추면서 다가온다.

    시가 감각이라면 이는 시인의 표현에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필수 요소

    -이준영의 표현미는 뛰어난 감각성을 역동적인 효과로 처리하는 방법이 성공적인 시 쓰기에 일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2) 신선하고 맛 좋은 봄

     

    시라는 존재는 논리는 아니지만 의미의 확충을 꾀하는 감동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정치(情致)- 구조의 통일을 갖추어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감동의 요인은 사실에 접근되어야 하고 과학적인 근거를 의미에 내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징의 효과 혹은 비유의 적절성이 적재적소에 배치될 때 비로소 잘 지어진 한체의 집이 완성될 수 있다면, 시의 상징이란 감춤도 아니고 드러냄의 성질도 아니고 반 투명성(eranslucency)에서 결국 애매성(모호성) (ambguity)의 의상을 갖추는 조직-

    이 특성에서 시는 마침내 질서의 예술이 된다.

    즉 봄을 말하기 위해서 결코 봄의 재료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봄의 이미지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봄은 비로 출발한다. 이는 겨울의 살벌함을 씻어내는 역할의 상징이 되어야 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깨움의 요소로 작동되는 이미지가 바로 비이기 때문이다.

     

    돋는 싹을 스치고 모든 생명의 풀포기를 만나

    열어젖힌 내 창문을 두드린다.

    진종일 물안개 뽀얗게 이는 산골 마을

    오래도록 울고 또 울고

    하느님처럼 산과 들을 거침없이 지나던 비

    드디어 연둣빛 물세례로 산천초목이 춤을 춘다.

    4, 부활의 대지는 힘든 숨을 몰아쉬면서

     

    -봄비

     

    부활의 대지를 달성하기 위해 비는 제 역할을 다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생명의 풀포기를 위해 창문을 두드리는 비유가 다가오면, 대부분 물상은 겨울의 긴 터널을 벗어나는 신호로 일제히 연둣빛 칼라의 행진이 산천초목을 덮는 효과를 만들게 된다.

    이런 요인은 비의 속삭임이 아니라면 봄의 이미지는 살아날 수 없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시적 전환의 기회를 놓치는 일이기에 시인은 비와 봄을 위해 탄력적인 자연의 노래를 로부터 만들게 된다.

    봄비가 내림으로서 생명의 이미지로 이어지고 자연의 재현 앞에 는 제2의 자연을 재생하는 역할이 수행된다. 왜 그런가 하면 비의 다음 순서는 꽃을 만나는 일이다.

     

    봄의 마음이 되고 싶어

    죽은 듯 하나 소생하는 아름다움

    생명으로 돋아나는 계절이 싶으며

    햇살처럼 가슴 따뜻한 4,

    산 벚꽃 닮아 맘 고운 사랑의 사람이고, 싶다.

     

    -중략-

     

    -산 벚꽃 고운 날에

     

    이준영 시인은 4/5월에 가장 시적 흥취를 느끼는 듯하다.

    봄비』 『』 『길목에 선봄등의 시는 절로 일렁이는 감수성이 가락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인의 정서가 봄에 가장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남기고 있기 때문에 4/5월 자연을 시로 나타내는 뜻이 된다.

    인용하자면 봄의 마음이 되고 싶어.”의 소망은 2연에 꽃잎의 속삭임이 되고 3연에선 사랑의 사랑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 아울러 4연에서는 봄을 짓고 사랑을 짓고의 봄과 사랑의 결합 그리고 5연엔 맑은 눈 가지고 싶다.’ 6연엔 정갈한 여자소망을 꼭 껴안은 여자로 양적(兩敵) 의 암시를 봄으로부터 갖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 모든 의미를 집합하면 봄엔 순수한 여자의 사랑이 연상되기도 한다. 더불어 4월에 피는 꽃들의 이미지가 숨어 있지만 향기를 배제할 수 없는 것 같고

    꽃의 시각성과 향기의 후각이 결합한 공감적인 효과는 고귀한 사랑을 봄에서 얻고 싶어 하는 시심의 발동이 왕성한 정서를 부추기는 상징의 계절이 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사랑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3) 인내의 기대와 희망을

     

    절망은 희망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면, 희망을 절망의 토대 위에서 길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절망은 희망의 순서를 대기하는 이해에서 희망은 인내의 시간을 가질 때 다가오는 순서일 것이다.

    아울러 시는 희망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또 사랑을 위한 방법을 내포할 때, 비로소 시의 가치는 고귀한 이름으로 득()할 수 있다.

    시를 읽는 것은 희망과 행복을 읽는 것이고, 사랑을 읽은 일이라면, 더불어 따라오는 꿈과 소망의 그림자는 행복을 준다.

    이런 이유로 시의 소용(所用)이 있기 때문에 활력과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시라는 의식의 높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 한번 놓은 적 놓은 적 없는

    희망에 살았다.

    사방이 꽉 막힌 터널 속이다. 지금

     

    지레 겁에 질려

    눈앞이 아찔한 순간에도

    잠시 정신 차리자고 속삭인다.

    여전히 하늘 떠 있는 강물 위를 바라볼 때

    희망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꽉 막힌 벽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면 스스로 열리던 나날의 하늘 문

    어설픈 한 손이 공기를 때리고

    허공을 휘젓게 하지는 않으리라,

    왼손으로 창을 열고 하늘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는 아침

     

    - 희망은 늘 그 자리

     

    희망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상은 아픔과 시련이 있을 때 가능한 역설적인 생각이다. 왜 그런가 하면 즐거움이나 행복 속에서는 희망의 이름이 부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설의 이름은 항시 대기 상태에서 밖으로 나올 기회를 엿보지만, 인간은 희망의 가까움을 신념으로 키우지 않으면서 탄식만 길어지는 경우가 절망에 압도당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고의 다짐이 있기 때문에 희망의 싹은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희망의 기회를 다짐하는 경우보다 탄식하는 순간에 질리면 하늘의 문은 열릴 방도가 묘연(杳然)해지는 일이지만 이 시인의 신념은 이런 처지에서도 앞을 주시하는 일면 창을 열고 하늘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는 아침의 준비를 마련하기 때문에 밝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인자(因子)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침묵의 시간

    땅에서 자란 하늘을 뚫고

    긴 장대에 메어단

    긴 목

    나무의 키만큼 자란 꿈

    땅에서 하늘로 이어주는 길을 내고

    새의 깃털을 입은 소망 하늘을 난다.

     

    -솟대

     

     

    인간은 늘 하늘을 날아야 하는 소망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은 구원의 이미지가 들어있고 꿈에 대한 열망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하면서 날아야 하는 하늘에 동경의 역사로 점철, 되었다는 데에 있다. 하늘이란 원래 고귀한 혹은 정착해야 할 마지막 개념일 때, 새들은 이를 대신하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비상한다. 이는 인간의 뇌리에 정착한 소망이 곧 하늘로 지향점을 마련하는 상징으로 대체될 때, 새는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임무에 헌신했다.

    왜 그런가 하면 지상에서 하늘로 다리를 놓고 그 위에 새의 형상을 갖추면 인간은 여기에 기도를 올리는 경건함을 신앙으로 삼아 왔다.

    이 꿈은 곤궁한 현실에서 구원의 하늘로 이어지는 메신저의 역할이 새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이 시인의 시에는 희망의 발언이 많은 편이다. 기다림』 『소망등은 꿈과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노력이 투영되어 미지로 향하는 정서들이 건강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2. 에필로그 자유와 소망의 꿈들

     

    시는 마음을 그리는 퐁경화이다. 라는 데에는 이견은 없을 것이다. 무슨 그림을 그리는가는 시인의 상상이 빚는 소재라면 이를 기교를 어떻게 표현할 것 인가는 시인의 재능에 귀속된다고 볼 수 있다. 문학적인 상상은 현실의 상상과는 다른 차원의 깊이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라-

     

    이는 시인의 삶이 축약될 수도 있고 오랜 습작의 소산으로도 돌릴 수 있는 이유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소재와 기능이 우수하고 시인의 체험이 상상과 결합 된다면, 그가 빚어내는 시는 탁월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인의 상상은 매우 재치가 넘치고 또 사물의 수용에 감각적인 특징이 보인다. 특히 봄에서 느끼는 생동성에서는 의욕이 분출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고 계절에서 느끼는 편안한 표정으로 사물을 대면 하기가 다양하게 이채롭다.

     

    물과 바다 자연을 재료로 떠나는 여행이 조급하지 않고 한가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주는 인상이라면, 가을의 깊이는 심사(心思)한 사색의 길이 열리고 색깔의 자유가 편안하다. 그러나 겨울은 백색으로 포장된 성주(城主)-

    그가 꿈꾸는 성안의 모습은 평화와 아늑함을 주면서도 따스함이 따라오는 그런 투명의 시를 그리는 이준영 시인의 표정이 정겹고 속이 보이는 그런 시인인 듯하다. 장문의 시평이라 일부 잘린 상태에서 에필로그 한다.

     

    2025. 04. 02.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필자 칼럼집 1]

     

    [필자 시평집 2]

     

    [필자의 시평집 3]

     





    저작권자 © 금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
다음
▲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