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각 이미지와 계절 정서]5

    1. 입구에서

    by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5-06-22 17:37:27

     

     

    [필자]

    낯선 이국에서 생활하면서 시를 쓰는 일이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언어권이 다른 공간에서 우리의 언어로 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지만 낯선 섬에서 낯선 언어로 쓰는 정서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의문점은 시인 자신에게서 더욱 갈증일 것이고 고달픈 고행일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동일 언어로 소통하는 공간의 정서와 타국에서 표현된 정서의 교류는 매우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낯선 곳에서 감수성은 발성될 것이고 시와 만나는 일이 가능할 것이지만 문자화된 작품의 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라 우려가 남는다. 때문에, 모국으로 보내서 소통의 기회를 엿보는 작품의 표정은 현실감이 떨어질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시와의 치열성 문제와 외국에서의 정서와 한국 정서와는-

    외국인에게는 낯선 표정만이 교류될 것이라는 점 가장 민감하고 정확한 시의 경우 이국에서 정착한다는 것이 확실히 소통에 지난한 일이라는 데서 동감하게 된다

    소통의 어려움은 창작의 이완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홍일점의 작품을 접하고 위와 같은 갖는 것은, 그가 30년을 조국과 떨어져 살면서 시를 창작한다는 일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필자 또한 조심스러운 마음이었으며 난감하고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면서 섬세하고 따스한 정감이 흐르는 시의 품격이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고 그의 고백을 들어가 보기로 한다.

     

    풋고추 된장 눈앞에 아른아른

    잠들라치면 흔들어 깨운 생각들이 손잡고 노닐자, 앙탈을 부렸고

    서투른 칼질이 젓가락보다 익숙지 않았기에

    촌놈이란 명칭은 떼어낼 수 없지만

    열 손가락이 있어도 젓가락 잡을 줄 모르고 서양인보다 낫더라

     

    살다보면 내 집이요. 정들면 고향인데

    고국산천 옛 친구들도 그리워 달려갔었지만

    변해버린 옛정들은 찾을 길도 없더라.

     

    서문 촌놈이 양식 먹고

     

    매운맛 고추와 구수한 된장 냄새가 그리운 이국의 생활에서 비록 포크나 나이프로 생활하는 일이 서툰 생활이지만-

    촌놈”- 아마도 낯선 의미이어라- 이국의 생활에서도 오히려 아른거리는 구수한 된장 맛과 풋고추의 아삭거리는 소리에 자긍심을 갖는 생활에 꿋꿋함일지라도 고국산천- 옛정들이 변해버린현실에서는 아픔을 고백하는 마음이 측은하다.

    비록 선택한 고통이고 아픔일지라도 수구초심의 고향을 지향하는 일은 누구나 갖는 본심이고 진실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홍일점의 시는 사계절의 구분이 명확하고 이를 포착하여 정서의 흐름이 매우 유연하다. 봄날의 시에는 생동의 정서가 펄럭이고, 가을에는 삭연(索然) 함과 쓸쓸함의 중첩 그리고 겨울에는 독목(禿木)의 신산한 고독이 시인 자신의 모습으로 오버 랩 되어 다가오고 더불어 여름의 시가 드문 경우는 환경적인 요소-

    환경은 정서를 촉발하는 에너지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 많은 접촉을 하게 되면 생각이 집중되는 것과 같은 이치는 감수성의 친소 표현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2. 상념의 날개들

     

    1)

     

    비는 생명과 물의 상관을 떼어 놓을 수 없고, 정화의 이미지를 수반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고귀성을 유추하게 된다. 스며드는 감각을 나타내면서 기체와 고체의 사이에 변화를 거치기도 하고, 천상의 소식이 지상에 아름다운 변화-

    꽃이 되거나 갈증을 삭여주는 느낌에 시원함을 수반한다. 때문에, 비는 곧 지상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생명으로의 에너지가 작동되는 가락으로 화하게 된다.

    만약 비가 없다면 이는 사막의 삭막함을 연상하게 되고 불모의 땅이라는 점에서 대척적인 이미지로 작동된다.

     

     

    인간의 신체 구조나 모든 생물체에 물이 70%가 물의 구성요소일 뿐 아니라 지장의 생명에게는 필요의 절대성 때문으로 물의 역사는 곧 인간의 순환을 이어주는 자연의 고리는 단절되기에 비, 혹은 물의 이미지는 항상 시의 원천의 요소로 자연과 자연의 생명체를 연결하는 바탕이 되어 왔다.

    지상의 물은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구름이 모여 비가 되고, 다시 되풀이, 할 때, 윤회(輪廻)의 업장이 계속되면서 우주의 질서가 형성(形性)되기에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 즉 원형이정으로 돌아간다는 원리이다.

     

    홍일점의 시는 비를 가지고 잦은 빈도로 얼굴을 내민다.

    봄의 일상』 『봄비 내리던 날』 『별이 되고 달이 되는』 『어제 내린 비등은 새로운 변화를 유도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시적 변화를 갖는 물의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어 보인다.

     

     

    밤새워 울던 비는

    구름 위에 앉아

    한 줌 햇살 그리워

    울먹이다가

     

    무거워 속마음

    참아내지 못하고

    서글피 우는 눈물이었지만

     

    마음에 파란 창이 열리면

    파릇한 새싹으로 마음 달래고

     

    화사한 마음

    흰 구름 되어, 여유롭겠지

     

    어제 내린 비

     

    마치 상사화처럼 비와 햇살은 서로 떨어졌지만 실제로는 밀접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은 햇살이 숨어야 하고, 햇살이 나오는 날은 비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을지라도, 안으로는 이 둘의 관계는 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면서 존재를 왕성하게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뿌리에 물이 공급될 때, 삼투압의 줄기를 따라 잎에 이르는 길이 열리고 햇살은 다시 잎에 영양을 만드는 장치를 지속하게 될 수 있는 이치는 햇살과 물의 연관으로 서로 존재가 분명해진다.

     

    는 햇살이 그리워 울먹이는 순간을 지나 눈물의 이미지로 지상에 내려오는 과정을 통해서 새싹으로 전환하면서 화사한 구름이나 여유로운회전(會戰)의 길을 만드는 비의 일생이 그려진다.

    불가의 이미지로는 윤회이고, 생명체는 매개체의 역할이고,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꽃을 볼 수 없는 생명의 기능을 비는 수행한다.

    비가 있어야 봄이 온다. 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또 꽃이 피어나는 계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비의 역할은 인연의 긴 줄을 잡아 회전하는 역할에 잡아든다.

     

     

    그대는 아시나요.

    비가 오면 무심결에

    창밖을 보는 버릇을

     

    그대는 아시나요.

    밤새워 내리는 비가 그리워 흘리는 눈물이라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길잃은 미아처럼

    그대 마음을 찾아 나선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그늘진 돌 틈 사이 이끼가 자라듯

    알 수 없는 마음에 싹트고 있는 사랑을

     

    그대는 아시나요.

    연둣빛 새싹이 움터 오르듯

    그대의 마음결에 꽃피운 사랑을

     

    그대는 아시나요.

     

    그대를 아시나요. 5번 반복함으로, “꽃피운 사랑을강조하게 된다. 이름을 가져오는 인자(因子)는 비가 메신저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부드러움을 상상하게 될 뿐만 아니라 사랑의 꽃으로 연결되는 길이 형성된다. 그러나 비가 오면 누구나 창밖을 바라보는 버릇이 기다림과 매칭이 되면서 사랑의 감수성이 서서히 자라게 된다.

    왜 그런가 하면 기다림은 곧 연정의 정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비가 그리워 흘리는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순수의 물결이 되고 이는 찾아 나서는 길이 유추가 된다.

    다시 비를 통해서 연둣빛이 움트는 것은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자연스레 사랑 앞에 당도하기 때문이다.

    홍일점 시인은 은근함으로 대표되는 비를 통해 잠을 깨우면서 사랑이라는 고귀하고 순수함으로서 시적, 모티브로 달성하기 위해 한 방편으로 비를 동원한 정서가 유연하고 아름답다.

     

    2) 갈증 그리고 봄

     

    갈증은 곧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행동을 예비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수순을 거치면서 변화를 맛보게 된다.

    겨울의 추위가 없다면 봄의 꽃은 없을 것이고 불편이 있기에 과학으로 해결하는 편리가 인간을 안락하게 하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부족은 만족의 모태가 된다

    이 어설픈 명제에는 진리가 함축된다. 부족이 만족을 낳고 만족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부족이나 갈증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만족을 위한 길을 행동으로 보일 수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흐릿한 구름 뚫고

    한 줌 햇살 찾아와

    슬며시 입맞춤하고 간다

     

    구름이 걷히고

    바람도 숨 고르면

    다소곳이 손잡고 거닐 수 있으련만

     

    뜨거운 사랑으로

    빛을 찾아 손 내민 나무 같이

    갈구하는 사랑이지 싶다.

     

    갈구하는 사랑

     

    구름에서 빛이 나오고 고통에서 행복이 오듯, 햇살은 최종의 기다림이고 구름은 이를 훼방하는 이미지로 다가들 때, 어둠에서 빛이 나오는 행복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된다. “뜨거운 사랑을 사랑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하고 찾는 방황이 있어야만 사랑의 환한 빛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유는 모든 물상에서 통용된다. 때문에, 인과적(因果的)인 현상이 증명으로 통하고 증명은 다시 되풀이되면서 삶의 원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홍 시인은 이런 정서에 매우 달관(達觀)된 정서를 유지하는 생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고 나무같이정정한 생을 이룩하기 위해 열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갈망』 『갈 길을 잃은 밤』 『당신의 눈 속에등은 어둠에서 빛을 찾아 나서는 이미지가 승한 시들이다.

    봄은 어둠을 뚫고 나오는 계절이다. 왜 그런가 하면 겨울은 어둠이고 방위로는 북쪽, 높새 바람이 세찬 기운을 몰고 올지라도 마침내 봄기운에 꺽이는 의미를 남긴다.

     

     

    봄은 심술을 부리다 떠난

    겨울의 빈 빈집에 신방을 차리고

    화사하게 춤추는 무희를 초대했나 봅니다.

     

    앙상한 가지에 꽃, 단장시킨

    풋풋하고 청초한 봄 처녀들의 무희는

    가슴을 설레발치게 하고

     

    길모퉁이에도

    바짝 마른 야산에도

    펼쳐놓은 잔치에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릴지 모르지만

     

    간드러지게 웃고 있는 화신들

    목 길게 빼고 날씬한 몸매를 뽐내는

    각양각색(各樣各色) 무희의 춤사위는 지칠 줄 모르고

    발길 닿는 어디든지 공연 길을 나서려 합니다.

     

    축제의 봄

     

    봄은 나무들이 푸른 낙원을 색칠하는 계절이고, 꽃들의 축제이며 또 향기의 상승으로 고귀함을 연상하면서 들썩이는 계절이다. “무희들의 초대는 바로 잔치를 준비하는 계절을 암시하고, 2연에는 처녀들의 싱싱한 모습의 육감적인 비유, 그리고 잔치의 인파와 더불어 노래가 세상을 장악하는 기회가 도래했음을 알린다. 꽃들에는 윤기가 흐르고 다시 향기로 세상의 공간이 분주하면서 벌과 나비들은 인파를 이루는 인간과의 대조를 형성하면서 더불어 바빠진다.

    꽃이 향기로 상승하는 것은 봄이 주는 특별한 기회이면서 자연의 질서가 형성-

     

    꽃과 향기는 서로 보완적인 상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시는 외형보다는 내면의 통찰이 섬세할 때, 오히려 독자의 심금을 자극하기 때문에 겨울에서 봄으로의 진행하는 질서-

    이겨내는 용기 혹은 고통, 아니면 사랑을 지불함으로써, 얻은 꽃과 향기의 상징에 감동을 수반하게 된다.

    시인은 이런 풍경의 제시로 보여주는 흥겨움을 전달하면서 화려한 장마당처럼 분주해지는 흥취에 젖는다.

     

    3) 가을 노래

     

    홍 시인은 계절 감각이 유난히 뛰어나고 예민한 것 같다.

    이는 감각의 발달일 수도 있고 의도적인 계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에 가까운 인상에서 진심이고 참된 시의 표현미가 발동된다는 느낌이다. 봄날보다 가을의 이미지가 다수인 것은 아마도 남자의 정서-

    깔끔하면서도 서늘함에서 오는 외롭고” “쓸쓸한감수성이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듯하다. 이는 실제의 외로움이나 고독이 아니라 정서상에서 오는 느낌이 반응이라는 뜻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계절별로 따지면 가장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인의 내면 정서에서 발동되는 기운이 시의 진로를 일어나게 만드는 이유로 돌리면 되지 않을까.

    가을 단풍』 『가을 연가』 『가을 여행』 『그리움의 가을밤』 『몇 잎 단풍』 『한 잎 낙엽등 가을의 정취는 낭만적인 무드를 선행하고 있는 시들이다.

     

    낭만을 먹고

    토해낸 가을은

    시들어간 풍경으로 저물어 가는데

     

    하얀 서리꽃

    앙칼진 눈초리가

    살얼음판을 만들려 하는데

     

    만추에 만삭이 된

    절정의 가을은

    절벽 위에 우두커니 고개를 떨어트리고

    찬 바람에 발등 찍힌 단풍

    야위어간 모습으로 슬픔을 노래해

    달랑거린 몇 잎 단풍

    외줄타기 고개로 떨고 있구나

     

     

    몇 잎 단풍

     

    조락(凋落)에서의 반응은 슬픔이거나 우울 같은 느낌이 짙을 것이다. 그러나 서늘한 가을의 슬픔은 감정을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주변의 모습에 슬픔을 고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젖게 된다.

    이는 질축(嫉逐)의 슬픔이 아니라 순수를 찾아 나서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반응하는 양상이기 때문에, 가을 정서는 여린 마음이 더욱 많아진다.

    홍 시인의 마음은 대상에 쉽게 반응하는 가을 정서 때문에, 쓸쓸한 가을 풍경에 비유-

    낙엽에서 삶의 아픔을 노래하게 된다. 1연에 시들어간 풍경서리꽃의 앙칼진표정의 2연 그리고 3연에는 만삭이 된 가을의 절정에서 느끼는 고개 숙임과 4연에서 슬픔을 노래하고 마지막에는 몇 잎의 단풍이 곡예하듯 위태로운 모습에 연민의 정서가 앞장선다.

    결국에는 시인 마음에는 가을에서 슬픔을 반영하는 낙엽의 슬픔과 대칭을 이루는 인간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가을 정서가 시로 나오는 것 같다.

     

    이러한 시들을 하나하나 평을 하자면 너무 장문의 글이 될 것 같아 겨울의 논지는 이만 접으려 한다. 4계절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장문의 평도 길어지면 식상한 듯하여 마무리에 들어가려 한다.

     

    3. 에필로그

     

     

    한 사람의 시인은 영혼을 일러주거나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시는 밝아야 하고 꿈과 사랑 그리고 행복의 전도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발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곧 햇빛에 상관해서 출발하고 절망이나 불행조차도 행복으로 맞아 드리는 고통의 문이라면 시인은 일상의 생활에서 이런 경험의 체득을 시화하는 길을 스스로 만들고 여기서 개성을 발휘하게 된다.

    시는 곧 시인 개성의 문패이며 이를 확고하게 정착하는 일은 시적 성취를 구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활하고 거듭나는 홍일점 시인의 경우는 낯선 정서에서 우리의 언어로 시를 만드는 고역에서도 매듭이 없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만큼 모국어의 표현과 숙달에 능숙하다는 말로 바꿀 수 있겠다. 한 편의 시는 언어의 결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비가 봄을 불러오는 상징으로 쓰이면서 다음 단계의 꽃이나 향기로 승화하는 순서를 갖는다.

    꽃이 천상의 이미지 곧 향기에서 그의 시 또한 향기로 감싸지는 느김이다.

     

    갈증이 있어 봄은 더욱 싱싱한 인상 더하면서 그대에게로 향하는 사랑의 신념이 굳어 보인다.

    가을과 겨울의 정서는 시인의 심상에서 작동되는 개성의 표현일뿐만 아니라 요즘 말하는 간결한 순수를 내포하는 정서로 일관 된다.

    가을은 따스함을 추구하는 이미지라면 가을은 시심의 동력을 제공한다는 뜻에서 시인의 마음과 일체화된 가락으로 채워진다.

    이로 본다면 홍일점 시인은 가을의 중심을 배회하는 순수한 풍경화와 계절의 인용을 잘하는 질축하고 질펀한 시인이라 보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5. 0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필자 저서]

     

     

     

     
     
     
     
     
     
     
     
     
     
     
     
     
     
     
     
     
     
     
     
     
     
     
     
     
     
     
     
     
     
     
     
     
     
     
     
     
     
     
     
     
     
     
     
     
     
     
     
     
     
     
     
     
     
     

     

    [필자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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