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꾸는 크레파스]

    {시인/전진식}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2025-08-06 17:58:08

     

    [시인/전진식]

    [꿈꾸는 크레파스 ]

                              시인/전진식 [田塵]


     노인이,
     젊은이와 사랑에 빠진다
     빨간 크레파스를 들고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는 수탉이 
     지붕 위에서 길게 목을 뽑아 새벽을 깨울 때 
     엉킨 실타래를 풀며
     혼돈한 머릿속의 비밀은 말하지 않기로 한다

     그네를 탄다
     언덕 너머로 숨은 무지개를 찾으려고 
     줄을 잡고 흔들어 보지만 
     되돌이표 음률
     발돋움에는 한계가 있고
     부엉이가 울 때는 쉬이 밤이 가지 않았다
     
     엇갈린 웃음들이 인화지에 그려지고
     탈춤을 춘다
     사는게 무엇인지
     쳇바퀴 속을 달음박질하는 다람쥐                      
     돌다가 돌다가
     허리춤에 걸린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도 몰랐다
     
     신장개업 푯말 앞에는 
     하늘을 향해서 양팔을 흔들며 춤추는 풍선이 보이고

     꿈은 이루어진다
     언덕 위에 서서
     깃발이 바람을 날리고 있다

    시집: [비탈길 사람들] 중에서


    전진식 시인의 시 「꿈꾸는 크레파스」는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풍경 속에서 인생의 회고와 희망을 시적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시인은 노인의 시선으로 삶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열망과 꿈을 고요하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감상문

    전진식 시인의 「꿈꾸는 크레파스」를 읽으며, 한 편의 몽환적인 영상시를 감상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인의 사랑, 붉은 크레파스, 날지 못하는 수탉, 
    언덕 너머 무지개, 그네, 다람쥐, 인화지, 바지, 풍선, 깃발… 이 
    모든 상징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유영하며 시인의 내면을 비춘다.

    시의 첫 구절은 충격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노인이, 젊은이와 사랑에 빠진다"
    이 한 줄은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감정의 자유를 선언한다. 그것은 노인이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회고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붉은 크레파스’를 들고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생의 의지다.

    이 시는 어쩌면 젊음에 대한 동경이라기보다는,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는 수탉"처럼, 한계를 인식한 존재가 품는 ‘비현실적인 꿈’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그 한계를 ‘혼돈한 머릿속의 비밀’로 품고, 굳이 말하지 않기로 한다. 침묵 속에 더 큰 고백이 담겨 있다..

    언덕 너머 무지개를 찾아 흔드는 그네, 
    쉬이 가지 않는 밤, 
    인화지에 새겨진 엇갈린 웃음들, 
    바쁘게 살다가 흘러내리는 바지춤도 못 챙기는 다람쥐… 
    시 속의 이미지들은 삶의 희극성과 우울함, 애틋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특히 "탈춤을 춘다 / 사는 게 무엇인지"라는 대목은,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실을 일깨운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은 인상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꿈은 이루어진다"
    언덕 위 깃발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시인의 체념을 넘어선 확신으로 읽힌다. 
    고단하고 어수선한 삶의 풍경을 지나온 뒤, 
    끝내는 깃발이 바람을 맞으며 당당히 나부끼는 것이다.

    이 시는 인생을 살아온 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꿈의 색채를 보여준다. 
    붉은 크레파스로 시작된 그 꿈은 혼돈과 슬픔을 지나 결국 바람 속에서 휘날린다.
    삶이란, 
    결국 되돌이표 음률을 반복하며도 한 줄의 붉은 선을 그려내려는 크레파스 같은 것 아닐까.
    이 시를 읽는 우리는, 
    그네를 타는 노인과 함께 다시 언덕을 향해,
    꿈을 꾸면서 깃발을 흔들게 된다.

    [꿈의 색채 1]

     

    [꿈꾸는 노인의 크레파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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