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문학으로 등단한 홍숙영 시인의 시집 ‘반짝이는 것들만 남은 11층’이 독자들을 만났다.
이번 시집에선 사회를 직관하고 오래도록 성찰한 홍 시인의 깊은 통찰력이 오롯이 드러난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메시지를 유화 이미지처럼 펼쳐낸 그의 시는 시의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책장을 들추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시는 ‘이상한 번역시와 골똘한 착상’이다.
인공지능이란 거대한 시대적 변화를 맞닥뜨린 문단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에서 홍 시인은 AI가 쓴 시는 일종의 착란과 같다고 썼다.
“빛나는 언어가 별처럼 떠다니는 시인들의 채팅방, 한 시인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각자 AI의 도움을 받아 시 경연대회를 열자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똑똑한 프로그램을 고른다면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는 거죠 사실 AI가 똑똑한 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엘리사 효과에 속고 있어요.”
그리고는 화자를 통해 AI가 쓴 시를 ‘이상한 번역시’라고 평한다.
기계적으로 문장을 만들어내는 AI의 모습을 비춘 홍 시인은 영국의 유명 포크가수로 알려진 ‘닉 드레이크’를 끌어들여 예술로서의 시의 본질을 언급한다. 시인은 망설임없이 노래한다.
“조바심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성공이나 사랑, 혹은 면접을 치른 어두운 기다림 속에도 / 하지만 날것의 예술은 느림이 힘이죠 어떠한 모델도 필요 없어요 나는 그 자체로 특별하니까요 따라 할 이유도 없답니다 / 요절한 천재 닉 드레이크는 분홍 달빛에 희망을 걸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의 노래에 관심을 갖지는 않았죠. 닉 드레이크의 ‘분홍 달빛’이란 어쩌면 일상과 예술, 평범함과 숭고함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마법입니다.”
홍 시인은 책 속 시인의 글을 통해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고 그런 문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보다 긴 시간 되짚어 보고 한편의 시에 담고자 했다”며 “동시대에서 펼쳐진 여러 문제를 나만의 방식으로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