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건 바꿔 말하면 죽어간다는 것. 우리는 결국 죽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삶은 좋기만 하고, 죽음은 나쁘기만 한 걸까? 지난 2일부터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는 경기도극단의 연극 ‘죽음들’은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만날 기회다.
그렇다면 죽으러 가는 우리들에게 누군가는 ‘잘 죽어서 사후세계에 도착하는 법’을 안내해줘야 한다. 무대 위에서 느린 속도로 기이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늙은 죽음(김성태)과 젊은 죽음(최예림)이 바로 그 역할을 떠안은 안내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불청객이 아니다. 죽음은 언제나 산 자의 곁에 동행하고 있었다. 늙은 죽음과 젊은 죽음은 어두운 무대 위 초록색 섬광을 받으면서 이런 말들을 내뱉는다. “상처받게 하지 말어, 우리는 누굴 죽이러 온 게 아니야. 태어날 때 산파가 필요하듯 죽을 때도 준비가 필요해. 우린 그걸 도와주러 온 거야. 누구나 죽는 건 처음이니까…”,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면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아…우린 늘 곁에 있었거든”.
천혜자(김지희)는 딸 지율(이은)과 아들 한율(김형준)의 걱정 속에 죽음을 앞두고 있다. 지율은 엄마 곁을 맴도는 죽음을 향해 증오와 거부감을 드러낸다. 우리 엄마 데려가지 말라면서 예정된 죽음을 따르지 않으려고 한다. 지율은 왜 우리가 죽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죽음이 오는 게 싫다며 죽음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려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랬던 그가 연극의 종착지에 이르면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연극 ‘죽음들’은 지율을 통해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질문을 만들어낸다.
지율의 서사가 전개되는 동안 엄마 혜자는 죽으러 간다. 그 과정에서 무대 위로 끼어드는 젊은 시절의 혜자(장정선). 그는 딸 지율이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에서 자신이 지율로 태어날 걸 알지 못하는 존재(육세진)와 대화를 나눈다. 시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장면은 또 있다. 결국 지율과 함께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다른 쌍둥이 아들(노민혁)이 늙고 병든 혜자가 죽고 난 뒤 사후세계에서 만난다.
이처럼 관객이 도착한 무대는 단순히 몇 마디 설명으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곳이다. 무대 위는 우리에게 익숙한 삶속의 시간들이 이어지다가도 갑작스럽게 관객들이 낯설게 여길 만한 삶 이전의 세계를 함께 구현하고 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명이 시작되는 세상, 마치 뱃속의 어딘가를 형상화한 듯한 삶 이전의 세계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현실 속 사람들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거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전환된다. 또 죽고 난 뒤의 세계도 묘사돼 있다.
흥미롭게도 각각의 세계가 공존하는 장면도 많다. 후반부로 갈수록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던 시간과 공간들이 점점 한 무대 위에 공존하는 장면이 늘어나는데, 각기 다른 곳에 있던 존재들이 한데 모여 함께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울림 있는 대사를 내뱉는 구간들은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면서 펼쳐왔던 독특한 서사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연극을 보다 보면 배우들의 의상과 대사와 몸짓, 배경과 음악의 조절 등을 통해 계속해서 교차하는 시공간의 변화를 관객들이 잘 따라갈 수 있도록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 이번 작업을 총괄한 김정 경기도극단 상임연출은 황정은 작가가 빚어낸 희곡 속의 텍스트를 무대화하는 작업에 있어 먼저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연출의 단초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김 연출은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계속해서 교차하고 함께 다룰 때 관객들이 그 장면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번 작업의 최대 과제였다”라고 덧붙였다. 무대는 7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