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영 시인의 세번째 시집 '그 길이 불편하다'는 1부로 묶인 '급식 일지' 연작이 인상 깊다. 시인이 화자로 등장하는 '급식 일지' 연작은 학교 급식실 현장에 들어간 듯 생생한 시어로 기록한 노동시이자 사실상의 르포로 보인다.
'식당 아줌마에서 여사님으로/ 여사님에서 조리원으로/ 조리원에서 조리 종사자로/ 조리 종사자에서 조리 실무자로' 그 이름을 얻기까지 30년 세월('급식 일지-이름')을 거친 학교 급식실 노동자의 모습을 우리는 배식 과정에서야 겨우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조리실에서 그들은 '펄펄 끓어 늘어지는 어묵 가락을 흔들'며 때론 뒹굴듯 웃거나('급식 일지-어묵국'), 때론 '새벽에 야채 식자재 싣고 오는 청년'에게 종이컵에 탄 커피를 건네거나('급식 일지-배달청년'), 때론 어깨 수술로 입원한 동료 노동자의 병문안을 우르르 몰려가 '기계 소리보다 목소리가 더 큰 여럿이서 떠들다' 간호사한테 주의를 듣기도('급식 일지-병문안') 한다.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는 장면도 있지만, 급식실은 과중하고 위험천만한 노동 현장이다.
'야채 절단기에 짜장밥 재료 중/ 애호박 써는 작업을 하다/ 손가락이 빨려 들어간 김은/ 급히 병원으로 가고/ 김의 빈자리를 채워 다시/ 기계를 돌려 감자도 썰고 양파도 썬다'는 급식실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일을 멈출 수 없다.('급식 일지-야채 절단기')
기름 솥에 던져 넣은 돈가스가 튀어 올라 180℃의 기름과 함께 화자의 목덜미에 방점을 찍는 순간 '살과 기름이 엉겨 달라붙어 흘러내리다/ 붉은 지렁이가 되었어요'라곤 하지만, 그 순간엔 다쳤는지도 모르고 일에 열중('급식 일지-화상')한다.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튀김이나 구이, 볶음 등/ 조리할 때 나오는 연기와 미세먼지가/ 1급 발암물질이며/ 황사보다 더 작은 조리 퓸이/ 사람들 입으로 코로 빠르게 들어간다', '그 발암물질이 일반 기준보다/ 4배에서 6배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교육청과 정부에서 모를 리 없지만' 당국은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것을 급식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으로 깨닫게 되는 현실('급식 일지-폐암')이다.
시인은 인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한 인천작가회의 회원이며, 제9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의 시선은 급식실 너머 구호가 퍼지고 깃발이 펄럭이다 사라진 광장으로, 아사히글라스 농성장으로, 해직자만 남기고 사라진 부평의 기타 공장 농성장으로,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고공 농성장으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현장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연대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내가 거리에서 광장에서 함께할 때는 사람도 깃발도 희망이었다. 지금은 그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닥친다. 내가 서 있는 곳과 가야 할 길이 여전히 혼란스럽고 때론 버겁다"고 고백한다. 시집 곳곳에서 이 같은 고민이 묻어나면서도 '나에게 노동해방은/ 간절함과 설렘이라고/ 아직은'이라며 희망을 기약('누가 나에게 다시 노동해방이 무엇이냐고 묻더군')하기도 한다.
시집에는 오래전 작고한 노동시인에 대한 것으로 보이는 시 '미투'가 수록됐다. 그 시인의 문학적 업적과는 별개로, 우리는 이 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