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신간] 이승섭 대중문화평론가의 베스트셀러집 {무의식의 평행}

  [베스트셀러 작가 평론가 이승섭] 작가『Best seller』라는 명패를 패용(佩用)을 했다고는 하지만 필자의 문학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로 제10집을 출간하면서 지금까지의 내 문학을 정리하다 보니 아직 기대치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 얼마나 양과 질이 높은 문학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은 필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집무실에서 유명한 고서들을 독파하는 것도 매우 버거운 일이지만 사회생활 전반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 어떠한 상징성을 나타내는 문학 정리라는 것도 아직도 본인은 미래를 가늠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늘 아쉬움만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10집을 출간하면서 정리하는 것도 미래의 창작을 위해 상당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 즉 고독의 의상을 입고 숙명적인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 한다. 시심은 늘 표현으로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의 모습은 언제나 시인의 마음과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출몰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처연한 정신의 줄기가 흐르는 느낌을 남기는 것이다. 철학은 늘 자기 자신을 찾는 길이기에 이 물음은 본질로 귀속되기 때문에 보편적 진리를 수용하는 조건이 붙는 것이다.     나라는 일인칭의 무게는 우주이면서 삼라만상의 전부를 뜻한다. 내가 없다면 이인칭, 삼인칭이나 의미는 없게 되기에 나로 향하는 질문은 늘 겸손하고 근엄한 윤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허난설헌 1· 2는】의 문학을 보면 곧 시인 스스로 허난설헌의 일생에 감염되기를 바라는 의도가 내재 되어 유사성의 일체를 객관성으로 부여하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많은 고독을 느끼고 살아오면서 허무는 번민을 가져오고 이 번민은 고독의 그늘에 갇혀 헤매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부재(不在)의 하루 속에서 점차 지쳐가는 나를 발견하면서 즉 거미집의 허무가 깃드는 장소로 스며드는 시간을 오랫동안 감금당해 보았기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허무는 늘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에 고독에 끌려다니다 보면 자신이 허무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일생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에 어떤 행동의 특징이 지배적으로 일생을 관통하는 특성의 집약이 있을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세 살 먹은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의 의미는 좋은 뜻으로 말한다면 행동의 연속성을 말하는 의미일 것 같다. 물론 환경에 따라 변하는 일은 예외가 아닐 것이지만 아무튼 지속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분주하게 움직이며 행동하는 것과 하나하나 정리하는 습관의 차이는 성품의 지배적인 요소일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화제의 맥을 나로 돌리면 나는 정리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성격이 급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유난을 떠는 것은 사실이다. 집사람과는 다른 성격은 느긋한 성미와 바쁜 성미의 대결은 언제나 충돌의 여지가 많았지만 이제 와서 필자가 지나온 높낮이의 언덕은 많았다고 솔직히 토로한다. 그렇다고 무슨 큰일이 있었는지는 물론 아니다. 누구나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때 감회에 젖는 그런 평범 중에도 평범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은 둘의 결합이지 하나의 주체로서 용해가 쉽지 않다는 것은 사실일 것 같다.   그러나 평론책이 『Best seller』가 되기란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시와 수필 소설과는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독자가 아니 비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구입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욱 무게감이 밀려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시간만 허락된다면 책상 위에서 글을 씁네 하고 자세를 정좌한다. 가령 하루나 이틀 지나도 어김없이 시간을 내어 책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확인이며 정리라고 한다면 정리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디에 가서 이삼일씩 여행하고 집에 와도 이런 일상은 여전하다. 이러한 습관은 내 삶의 모든 면에서 급한 성미의 일단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필자가 지금까지 원고 청탁을 받으면서 한 번도 날짜를 어긴 적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일도 그렇고 시간을 어긴 적도 없이 정확한 계산 하에 외출하는 것도 그렇다. 사실 이런 일들이 쪼잔하다는 말도 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대범하다는 것과는 달리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하고 정확한 일의 진행이어야 한다는 소심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온 나의 결정판이 내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 글 중에도 잘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의 소홀함도 없이 처리해야 하는 일은 그만큼 타인의 생각으로는 매우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될 수 있겠다. 역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도 내 성미의 일단이라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평판을 받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글의 세계에서도 선전하면서 문학상이니, 작가상이니 하도 많은 상이 즐비하게 있다고들 한다. 필자는 그런 상들을 타기 보다는 오히려 숨고 옆으로 가는 길이 내 적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은 성격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함께하지 못하는 탓도 있으리라- 그러나 한가지 욕심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쓴 작품을 모아 전집을 출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렇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시간 속에서 부담은 있지만 열정과 우직한 필자는 더욱 정진하고 琢磨해야겠다는 마음은 변치 않고 있다는 것에 주위에 지인들이 혀를 차지만, 실은 시간은 내는 것이지 시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내 스승님의 말씀이 자네는 다른 작가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야- 했지만 급한 내 성미와 고지식한 윤리라 할까 그런 것을 어찌하랴, 언제나 반골이 내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스승과 000 박사에게 많은 것을 배웠으며 그 옛날 이천 문사원대학에서 시평의 기본 틀을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존경하는 2분도 작고하신 것을 보면서 화무십일홍이며 인생무상이라고 느끼는 것은 필자만이 느낌은 아니리라- 어느날 문득 모 대학 학장이 어이 자네 와서 일 좀 맡아 줘, 했을 때도 인연이 되기는 하였으나 반골(反骨)이 앞장서는 일에는 내게 걸쳐진 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정중히 사양하고 말았지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입맛이 씁쓸하다. 다만 스승과 000 박사에게 따갑게 들었던 말은 자네는 양주동 박사의 12권 전집을 잊지 말고 양주동 박사의 12권의 전집 정도는 상재 해야만 된다고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과연, 거개인 그분들의 발밑에라도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라 보지만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outsider의 필자가 되고 싶은 것에는 변함이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말이다.     양주동 박사도 <고가연구 문학>과 <고려가요>의 연구에는 국내에서는 따라갈 학자는 없겠지만 사실 문학의 경우는 그렇게 판단은 하지 않으셨던 000 박사님의 말이 지금도 뇌리에 스친다. 오골성의 성미를 가진 작가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은사의 탑을 펌훼(貶毁)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지의 결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돈의 무게를 알고 있지만, 학문 가치로 예술의 무게를 아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 저서가 훗날에 고귀한 가치로 담보할 보장도 없는 일에 나를 위한 정감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물론 시를 배우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에 다소 쓸쓸함도 따라오지만 어떻든 고맙다. 그리고 기억하리라-   사실 폭넓고 많은 시평을 하지는 않았지만 outsider,인 필자가 매번 출간 때마다 best seller에 이름이 올라온 것은 사실 필자 자신도 놀라운 일이라 하겠으나 베스트셀러가 좋은 글을 쓴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만하지 말고 내 인생의 정리를 하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문학과 언론인으로서 다음 길을 가려고 한다.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말이다.     2024. 12. 제10집 후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이승섭 문학평론가의 베스트셀러 평론집 1]  

【『2024. 12. 제10집, {무의식의 평행}을 출간, 후』 허기지는 문학】

『Best seller』라는 명패를 패용(佩用)을 했다고는 하지만 필자의 문학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로 제10집을 출간하면서 지금까지의 내 문학을 정리하다 보니 아직 기대치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 얼마나 양과 질이 높은 문학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은 필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집무실에서 유명한 고서들을 독파하는 것도 매우 버거운 일이지만 사회생활 전반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 어떠한 상징성을 나타내는 문학 정리라는 것도 아직도 본인은 미래를 가늠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늘 아쉬움만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10집을 출간하면서 정리하는 것도 미래의 창작을 위해 상당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 즉 고독의 의상을 입고 숙명적인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 한다. 시심은 늘 표현으로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의 모습은 언제나 시인의 마음과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출몰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처연한 정신의 줄기가 흐르는 느낌을 남기는 것이다. 철학은 늘 자기 자신을 찾는 길이기에 이 물음은 본질로 귀속되기 때문에 보편적 진리를 수용하는 조건이 붙는 것이다.     나라는 일인칭의 무게는 우주이면서 삼라만상의 전부를 뜻한다. 내가 없다면 이인칭, 삼인칭이나 의미는 없게 되기에 나로 향하는 질문은 늘 겸손하고 근엄한 윤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허난설헌 1· 2는】의 문학을 보면 곧 시인 스스로 허난설헌의 일생에 감염되기를 바라는 의도가 내재 되어 유사성의 일체를 객관성으로 부여하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많은 고독을 느끼고 살아오면서 허무는 번민을 가져오고 이 번민은 고독의 그늘에 갇혀 헤매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부재(不在)의 하루 속에서 점차 지쳐가는 나를 발견하면서 즉 거미집의 허무가 깃드는 장소로 스며드는 시간을 오랫동안 감금당해 보았기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허무는 늘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에 고독에 끌려다니다 보면 자신이 허무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일생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에 어떤 행동의 특징이 지배적으로 일생을 관통하는 특성의 집약이 있을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세 살 먹은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의 의미는 좋은 뜻으로 말한다면 행동의 연속성을 말하는 의미일 것 같다. 물론 환경에 따라 변하는 일은 예외가 아닐 것이지만 아무튼 지속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분주하게 움직이며 행동하는 것과 하나하나 정리하는 습관의 차이는 성품의 지배적인 요소일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화제의 맥을 나로 돌리면 나는 정리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성격이 급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유난을 떠는 것은 사실이다. 집사람과는 다른 성격은 느긋한 성미와 바쁜 성미의 대결은 언제나 충돌의 여지가 많았지만 이제 와서 필자가 지나온 높낮이의 언덕은 많았다고 솔직히 토로한다. 그렇다고 무슨 큰일이 있었는지는 물론 아니다. 누구나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때 감회에 젖는 그런 평범 중에도 평범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은 둘의 결합이지 하나의 주체로서 용해가 쉽지 않다는 것은 사실일 것 같다.   그러나 평론책이 『Best seller』가 되기란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시와 수필 소설과는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독자가 아니 비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구입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욱 무게감이 밀려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시간만 허락된다면 책상 위에서 글을 씁네 하고 자세를 정좌한다. 가령 하루나 이틀 지나도 어김없이 시간을 내어 책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확인이며 정리라고 한다면 정리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디에 가서 이삼일씩 여행하고 집에 와도 이런 일상은 여전하다. 이러한 습관은 내 삶의 모든 면에서 급한 성미의 일단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필자가 지금까지 원고 청탁을 받으면서 한 번도 날짜를 어긴 적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일도 그렇고 시간을 어긴 적도 없이 정확한 계산 하에 외출하는 것도 그렇다. 사실 이런 일들이 쪼잔하다는 말도 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대범하다는 것과는 달리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하고 정확한 일의 진행이어야 한다는 소심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온 나의 결정판이 내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 글 중에도 잘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의 소홀함도 없이 처리해야 하는 일은 그만큼 타인의 생각으로는 매우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될 수 있겠다. 역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도 내 성미의 일단이라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평판을 받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글의 세계에서도 선전하면서 문학상이니, 작가상이니 하도 많은 상이 즐비하게 있다고들 한다. 필자는 그런 상들을 타기 보다는 오히려 숨고 옆으로 가는 길이 내 적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은 성격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함께하지 못하는 탓도 있으리라- 그러나 한가지 욕심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쓴 작품을 모아 전집을 출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렇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시간 속에서 부담은 있지만 열정과 우직한 필자는 더욱 정진하고 琢磨해야겠다는 마음은 변치 않고 있다는 것에 주위에 지인들이 혀를 차지만, 실은 시간은 내는 것이지 시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내 스승님의 말씀이 자네는 다른 작가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야- 했지만 급한 내 성미와 고지식한 윤리라 할까 그런 것을 어찌하랴, 언제나 반골이 내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스승과 000 박사에게 많은 것을 배웠으며 그 옛날 이천 문사원대학에서 시평의 기본 틀을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존경하는 2분도 작고하신 것을 보면서 화무십일홍이며 인생무상이라고 느끼는 것은 필자만이 느낌은 아니리라- 어느날 문득 모 대학 학장이 어이 자네 와서 일 좀 맡아 줘, 했을 때도 인연이 되기는 하였으나 반골(反骨)이 앞장서는 일에는 내게 걸쳐진 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정중히 사양하고 말았지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입맛이 씁쓸하다. 다만 스승과 000 박사에게 따갑게 들었던 말은 자네는 양주동 박사의 12권 전집을 잊지 말고 양주동 박사의 12권의 전집 정도는 상재 해야만 된다고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과연, 거개인 그분들의 발밑에라도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라 보지만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outsider의 필자가 되고 싶은 것에는 변함이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말이다.     양주동 박사도 <고가연구 문학>과 <고려가요>의 연구에는 국내에서는 따라갈 학자는 없겠지만 사실 문학의 경우는 그렇게 판단은 하지 않으셨던 000 박사님의 말이 지금도 뇌리에 스친다. 오골성의 성미를 가진 작가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은사의 탑을 펌훼(貶毁)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지의 결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돈의 무게를 알고 있지만, 학문 가치로 예술의 무게를 아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 저서가 훗날에 고귀한 가치로 담보할 보장도 없는 일에 나를 위한 정감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물론 시를 배우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에 다소 쓸쓸함도 따라오지만 어떻든 고맙다. 그리고 기억하리라-   사실 폭넓고 많은 시평을 하지는 않았지만 outsider,인 필자가 매번 출간 때마다 best seller에 이름이 올라온 것은 사실 필자 자신도 놀라운 일이라 하겠으나 베스트셀러가 좋은 글을 쓴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만하지 말고 내 인생의 정리를 하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문학과 언론인으로서 다음 길을 가려고 한다.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말이다.     2024. 12. 제10집 후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이승섭 시평집 베스트셀러]                                                                                                                         [이승섭 시평집 뒷면 2]   [이승섭 시평집 원본3]                                                             [이승섭 시평집 서평 4]      

[출간을 하면서]

      [제 10 집 출간 {무의식의 평행}] 첫눈 내리는 날 至難한 산통을 겪으면서 어렵사리 필자의 소중한 책이 출간을 했다. 늘 말의 무게를 느끼면서 낙엽처럼 흩어지는 말들의 날림을 볼 때마다 글의 숲속을 소요하는 일들이 하루 일상이었지만 언제나 처마 끝에 매달린 풍탁(風鐸)이 요란을 떨면서 내 상상의 길은 뚝 끊긴 듯 방황에 길이 역역한 길이 아니었던가 하면서도 일상이 대부분 사회성을 대입하면 어쩌면 인간관계란 곧 사람의 대면이 아닐까 한다 늘 살아오면서 필자가 만약이라는 꼬리표 즉 가정법을 버리고 영혼의 자유라는 착용을 하고 싶어 배회와 방황으로 불필요한 근심을 불러오는 일이라 내 그릇대로 살면서 내 그릇에 담겨진 양(量)만큼 세상을 보며 살아왔다.   내 가족 내, 형재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갖는 오늘이야말로 소중하고 필요한 덕목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의 시골살이가 형편을 가늠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에서 테어나 시골에서 자란 필자로서는 오히려 도시에서의 방황을 상쇄할 수도 있겠다 치부한다.   이제 노을을 보며 시니어에 들어서 무엇들을 첨가할 조미료도 떨어졌으나 한가지 더불어 순수한 자연의 깊이에 이를 때 인간은 깨어날 수 있는 이성의 불이 켜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술과 자연의 결합이 주는 안도감은 인간의 평정심으로 돌아가는 대안이라 믿는 것은 또다른 변화에 대처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필자의 정열과 투혼을 살려 어느 시절이나 삶과의 행불은 있기에 끝으로 희망의 대칭이 이루어진다면 예술은 언제나 이를 방지하는 깨달음의 약이 될 것이고 이 약은 곧 정신의 밝음을 유지하는 기능으로서 예술이 필요한 소이(所以)일 것 같다.     끝으로 현실이란 오늘의 문제만을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일 경우에만 미래는 자기의 세상을 구축하는 임무가 될 것이다. 이 원론적인 미래의 사고에는 평범하지만 평범을 넘어서려는 의지로의 자기일 때 오늘의 나를 이끌고 내일의 높이에 이룰 수 있다는 사유(思惟)의 길이 보다 명확하게 나타날 것이라 밑으며 {제10집} [무의식의 평행]을 출간하면서 수고한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작가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미력하지만 추천해본다.   2024. 11. 첫눈 내리는 날에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 제10집 이승섭 시평집 출간]    

【신간을 상재 하면서】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너무도 오랜만에 페북, 카카오스토리에 글을 올려본다.   매번 마음속으로 참칭(僭稱)하지 않겠다고 선서하고 약속하지만 살아가는 와중에 돌발 상황과 자기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느낀다.   뜬금없는 말일지는 모르나 한 줄의 글에도 가계도가 그려지고 사회적인 요인 더는 정신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만 늘 간과해서 넘는 일이 더욱 많을 것 같다. 사실 생각을 글로 표현했을 때 자신의 윤곽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사실 혹은 현실로 드러날 때를 판별하는 이유는 바로 작가라는 명분을 패용했기 때문이다. 샘물은 퍼낼수록 맑은 물이 나오는 것처럼 두뇌의 수원지도 자꾸 퍼낼수록 더 많은 물의 양을 확보할 수 있고 또 맑은 물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많은 여행과 조심스럽지 못한 일로 환경의 상처로 인하여 육체의 고단한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조심스럽게 제10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역설 정서로 상재 하였지만 독자들에게 다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니 왜 그런지 무게감에 밀려온다. 사실 조직이라는 무용을 주장하면 아나키스트가 될 것이지만 이도 사회의 그물망은 허락지 않고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아웃사이더로 생활하다 보니 감각의 촉이 떨어진 듯하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 혼자 생을 이어가는 것도 팔자소관이라면 운명이니 하며 낙관의 시간, 느림의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 그리고 페북 친구나 카카오 친구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리면서 말이다.     독자의 입은 너무나 까다로워 여론이 무섭다는 것은 三國遺事에서 나온 말에서 비롯된다. 즉 독자의 마음은 날씨와 같아서 언제나 수시로 변하고 깊이가 넘치는 말인가를 분석하고 알아야 하는데도 필자를 만나는 이들은 요즘의 정치가 황당한 질서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들 한다. . 뭐- 카더라~ 하는 증권사의 낱장 광고처럼 들린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민주라는 이름에 도전하는 도덕 불감의 잘못일 수 있다는 말로 볼 때 참으로 백골난망(白骨難忘)이 아닐 수 없다. 헛소리의 집합이 극심한 것은 현실에 있어 각종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이나 악성의 글들과 댓글은 독자들의 정신계를 흔들고 어지럽히는 것이 중구삭금(衆口鑠金)이라 할 것이다. 사회는 복합적인 문제를 수용하는 세력이 얼마나 건전한지 인간에 따라 사회의 건강성을 판단하게 되는 요즈음 바라보면서 또다시 아웃사이더로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겠다. 독자들의 이해를 바라면서   2024. 11.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제10집 무의식의 평행]     [백두산 천지] 더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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