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집 출간 {무의식의 평행}] 첫눈 내리는 날 至難한 산통을 겪으면서 어렵사리 필자의 소중한 책이 출간을 했다. 늘 말의 무게를 느끼면서 낙엽처럼 흩어지는 말들의 날림을 볼 때마다 글의 숲속을 소요하는 일들이 하루 일상이었지만 언제나 처마 끝에 매달린 풍탁(風鐸)이 요란을 떨면서 내 상상의 길은 뚝 끊긴 듯 방황에 길이 역역한 길이 아니었던가 하면서도 일상이 대부분 사회성을 대입하면 어쩌면 인간관계란 곧 사람의 대면이 아닐까 한다 늘 살아오면서 필자가 만약이라는 꼬리표 즉 가정법을 버리고 영혼의 자유라는 착용을 하고 싶어 배회와 방황으로 불필요한 근심을 불러오는 일이라 내 그릇대로 살면서 내 그릇에 담겨진 양(量)만큼 세상을 보며 살아왔다. 내 가족 내, 형재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갖는 오늘이야말로 소중하고 필요한 덕목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의 시골살이가 형편을 가늠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에서 테어나 시골에서 자란 필자로서는 오히려 도시에서의 방황을 상쇄할 수도 있겠다 치부한다. 이제 노을을 보며 시니어에 들어서 무엇들을 첨가할 조미료도 떨어졌으나 한가지 더불어 순수한 자연의 깊이에 이를 때 인간은 깨어날 수 있는 이성의 불이 켜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술과 자연의 결합이 주는 안도감은 인간의 평정심으로 돌아가는 대안이라 믿는 것은 또다른 변화에 대처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필자의 정열과 투혼을 살려 어느 시절이나 삶과의 행불은 있기에 끝으로 희망의 대칭이 이루어진다면 예술은 언제나 이를 방지하는 깨달음의 약이 될 것이고 이 약은 곧 정신의 밝음을 유지하는 기능으로서 예술이 필요한 소이(所以)일 것 같다. 끝으로 현실이란 오늘의 문제만을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일 경우에만 미래는 자기의 세상을 구축하는 임무가 될 것이다. 이 원론적인 미래의 사고에는 평범하지만 평범을 넘어서려는 의지로의 자기일 때 오늘의 나를 이끌고 내일의 높이에 이룰 수 있다는 사유(思惟)의 길이 보다 명확하게 나타날 것이라 밑으며 {제10집} [무의식의 평행]을 출간하면서 수고한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작가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미력하지만 추천해본다. 2024. 11. 첫눈 내리는 날에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 제10집 이승섭 시평집 출간]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너무도 오랜만에 페북, 카카오스토리에 글을 올려본다. 매번 마음속으로 참칭(僭稱)하지 않겠다고 선서하고 약속하지만 살아가는 와중에 돌발 상황과 자기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느낀다. 뜬금없는 말일지는 모르나 한 줄의 글에도 가계도가 그려지고 사회적인 요인 더는 정신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만 늘 간과해서 넘는 일이 더욱 많을 것 같다. 사실 생각을 글로 표현했을 때 자신의 윤곽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사실 혹은 현실로 드러날 때를 판별하는 이유는 바로 작가라는 명분을 패용했기 때문이다. 샘물은 퍼낼수록 맑은 물이 나오는 것처럼 두뇌의 수원지도 자꾸 퍼낼수록 더 많은 물의 양을 확보할 수 있고 또 맑은 물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많은 여행과 조심스럽지 못한 일로 환경의 상처로 인하여 육체의 고단한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조심스럽게 제10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역설 정서로 상재 하였지만 독자들에게 다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니 왜 그런지 무게감에 밀려온다. 사실 조직이라는 무용을 주장하면 아나키스트가 될 것이지만 이도 사회의 그물망은 허락지 않고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아웃사이더로 생활하다 보니 감각의 촉이 떨어진 듯하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 혼자 생을 이어가는 것도 팔자소관이라면 운명이니 하며 낙관의 시간, 느림의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 그리고 페북 친구나 카카오 친구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리면서 말이다. 독자의 입은 너무나 까다로워 여론이 무섭다는 것은 三國遺事에서 나온 말에서 비롯된다. 즉 독자의 마음은 날씨와 같아서 언제나 수시로 변하고 깊이가 넘치는 말인가를 분석하고 알아야 하는데도 필자를 만나는 이들은 요즘의 정치가 황당한 질서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들 한다. . 뭐- 카더라~ 하는 증권사의 낱장 광고처럼 들린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민주라는 이름에 도전하는 도덕 불감의 잘못일 수 있다는 말로 볼 때 참으로 백골난망(白骨難忘)이 아닐 수 없다. 헛소리의 집합이 극심한 것은 현실에 있어 각종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이나 악성의 글들과 댓글은 독자들의 정신계를 흔들고 어지럽히는 것이 중구삭금(衆口鑠金)이라 할 것이다. 사회는 복합적인 문제를 수용하는 세력이 얼마나 건전한지 인간에 따라 사회의 건강성을 판단하게 되는 요즈음 바라보면서 또다시 아웃사이더로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겠다. 독자들의 이해를 바라면서 2024. 11.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제10집 무의식의 평행] [백두산 천지] 더빙
[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이승섭] 누구나 처음은 미약하고 소득이 별로 없는 이유를 찾아 반성하고 아파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능숙한 기술자 없고 시작부터 유명해진다면 이 사람은 불행한 사람으로 전락할 여지가 매우 높다. 사다리를 올라가는 일은 한쪽발이 땅에서 가까워야 하며 또 견고한 이유가 뒷받침될 때 높이 오르는 길이 다져질 것이다. 필자 스스로 고개 넘어가는 길이다보니 깨닫는 일이 새삼 새로운 것들로 느끼는 요즈음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젋은 날을 지나 장년의 분주함 그리고 닥쳐오는 노년의 길에서 새로운 도전이란 말은 너무나 버거운 일인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일이 곧 노년의 마지막과 연결되는 줄에 이어졌기 때문이다. 젋어서의 일이 이어진 삶의 일이고 또 늙어서도 그런 일이 마침표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방향전환의 일은 매우 희소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이유는 타당한 일이 아닐까? 사실 필자의 글쓰기 그리고 전원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은지금도 유효하기에 아직도 왕성한 진행은 하고 있지만, 그리고더욱 많은 것을 써야 하기에 전원을 가서라도 줄기차게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부담에 사실 마음은 조급증이다. 사실 다소 늦은 글쓰기이지만 은퇴와 더불어 전원에서 다시 글로 길을 넓히는 일이 하나의 생활이 될지언정 글과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자신을 하지만 사람 앞일은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간의 일인지라 그 속도를 따라잡을지는 글쎄올시다.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일이 숫자로만 정하는 것은자랑은 아니기에 나를 시험하는일로 하루하루 재미로 살아가려 노력하려 한다. 타인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고독을 위무(慰撫)하기 위해 글과 맞붙어 살아가고 싶은 자아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내면의 휴머니즘의 사상이지 않을까 한다. 세상의 진행은 모두 이유가 내재해 있다는 점이다. 원인이 결과를 만들고 결과가 원인을 만들 합리가 되지만 필자는 나를 스스로 위촉하는 성적으로 인해 나서기 보다는 오히려 나 스스로에 혹사를 가함에서 즐거움을 갖는 성격이기에 누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고 시를 그리고 또 칼럼, 시평 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쓰려고 한다. 사는 일에 가정법이란 불필요한 것이지만 그런 생각은 결국 오늘을 합리로 이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오늘을 위안하는 일은 곧 현재에 만족을 갖고 살기 때문에 부끄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떻든 나는 많은 글을 요즈음 왕성한 필력으로 그리는 중이다. 물론 전원으로 간다는 다소의 기쁨도 있지만 사실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는 실험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2022년도 12월에 안성을 떠나 이천으로 나의 삶의 보금자리를 옮긴다는 마음이 평소답지 않게 흥분은 되지만 전원 속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급적이면 타인에게 베풀면서 버거운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필력을 시험하려 하는 것이다. 이제 좌고우면할 시간도 없으며 특별히 성을 쌓을 일이 없기에 신명을 발휘하는 글에 내 삶을 투척하는 일도 어쩌면 행운일 시 분명한 것 같다. 내가 내일에 자긍심을 갖고 하는 일이기에 다작은 못되지만 위안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렇다 온종일 책상앞에서 글을 짜내는 일이 달리 보면 웃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2023년이 얼마의 글이 써질지 추리하는 내 머리에는 신화의 그물을 치고 싶어진다. 여전히 앞으로 가는 보행은 건강하기에 더욱 왕성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제는 초조의 마음을 안 가지려 한다. 지금까지 직장이나 모임에서 등등 남보다 더 치열성으로 앞서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초조를 달고 살았다. 이제 욕심을 부린다면 추하고 덫에 걸린다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체념의 순간도 빨라야 하며 망각의 일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조짐을 순수하게 받아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부족에 만족을 아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왜 그런가 하니 갈증 현상은 더 많은 에너지의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겸손하고 고개 숙이는 삶의 동력을 갖는 이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말수를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앞으로 나의 삶이 전부가 아닐까 하면서 가는 것은 순식간이고 다가오는 것 또한 그렇거늘 이 중심에 선 존재자의 자세는 더없이 중요한 몫을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종국에는 자기의 현실을 받아드릴 때 비로소 적정의 수위를 유지하면서 생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족에 만족을 갖을 줄 아는 일이야말로 만족을 채울 줄 아는 지혜라는 뜻이다. 돌아보면 젊은 날의 패기 있고 사치스러운 지난날들의 기억이다. 무조건 남의 말에 끼어 내말이 옳다. 라는 주장이 얼마나 상대방을 곤란하게 느꼈을지는? 이제 전원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서 고독의 목록을 이겨야 한다는 숙제가 한가지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무작정 독파한 독서가 내 삶의 모두를 위로하는 목록일 것이기에 이제는 글을 쓰는 일이 주된 시간의 소일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결국은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의 처지에 소화제와 같은 구실을 다함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저녁을 먹고 서재로 올라와 다시 글 줄기를 이어가는 내 일상은 어쩌면 배고픔을 기다리는 일과 별반 다름이 없을 것 같을 때 허기는 일상적인 명제로 남는 것이 글과 배고픔은 어쩌면 전원에 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보면서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의 숙명을 타고난 존재라 했듯이 이성의 불을 켜고 곧게 산다는 명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기 수련 혹은 중심 잡기라는 숙제를 처리하는 신념이 우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련을 시련이라 느끼지 않으며 지속으로 다가오는 현실을 수용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일은 방심할 수 없는 나의 발견이라 생각하며 그 발견이 있다면 바람이 오면 바람을 따르고 물이 차면 비우는 일이 우선이고 때묻은 일은 한사코 거부하는 생리적 몸짓에서 내 삶의 그림자가 흔들릴 때면 집 앞에 연못에 떠 있는 마음을 잡아주는 연꽃에 마음을 묻으면서 살리라고 다짐하면서 이 밤에 달빛이 보고 싶은 충동조차 아름답다. 2022. 10. 30. 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이승섭 [황금들녁1]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이승섭] "맞다! "한국 내전 전야에 내린 윤 정부의 선전포고! 죽느냐 사느냐, 그 치열한 싸움 시작됐다! 한국내전(Korean Civil War)이 본격화하고 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헌법수호 세력과 민중민주주의 변혁세력 사이에, 사느냐 죽느냐, 싸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내전의 성격을 단적으로 정의(定義)했다. “주사파는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이 싸움은, 1985년을 고비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도권과 기조(基調)를 주사파가 장악하면서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 싸움의 기원은? 그러나, 주사파는 내부적으론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다짐하면서도, 대외적으론 마치 자유·민주· 반독재를 지향하는 듯 위장했다. 이 위장이, 일반 대중에겐 물론, 비(非) 좌파 지식인·정치인·미디어에까지 먹혔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자유 우파 국민이 저들의 속내를 분명히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운동권의 타락이 국민을 각성시킨 결과다. 김문수 경사노 위원장의 ‘돌직구’ 사상투쟁에, 자유 국민이 감동한 측면도 물론 크다. 양비론과 중간파 연명법 그러나, 다수 국민의 힘 정치인들과 비(非) 좌파 미디어들은, 오히려 우파로 불리기를 계속 꺼리면서 양비론과 중간파 연명법(延命法)을 쓰고 있다. 고소(苦笑)와 경멸을 금치 못할 세태다. 다행히, 이런 우파 진영의 혼란을 정리한 기준이 10월 19일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사파는, 좌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반(反)헌법 세력이다.” 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과연 어디까지 자유 우파인가를 묻는 여론이 꽤 있었다. 이 궁금증이 이 발언 하나로 상당 부분 풀린 셈이다. 이를 계기로, 국민의 힘부터 제대로 된 정통 자유주의 노선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탄핵동조 세력, 그리고 컴플렉스 찌든 이른바 '중도' 세력 탄핵에 동조, 결과적으로 '촛불정변' 성공 1등 공신이 된 바른미래당 계열, “김문수의 말이 지나쳤다”고 떠드는 자들. 바로, 이들의 어설픔을 배척해야 한다. 말은 모두 변명이라고 본다. 침묵만이 말이 아니며 언어는 변명의 들러리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변명 안하는 사람 보았는가? 모조리 자기 합리요. 자기 주장이 와전 되었느니 혹은 전달이 잘못 되었느니 남 탓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사파는 자기 합리를 더욱 주장한다. 말이 입밖으로 나올 때, 이미 변명의 구실이 첨가되고 다시 전달되면 더해진 비대함으로 완전히 눈사람으 형상이 되는 일이니 말이다. 말의 성찬이 기울다 보면 이성이 마비된다. 지금이 바로 그런때가 아닌가 본다. 이제는 의식 대결이다. 이데올로기에 침식당하는 불행이 깊다는 것도 말의 성찬을 구별 못하는 정서 마비와 얼치기 이데올로기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이다. 이제는 정통 자유주의로 무장한 새 팀이 국민의 힘 지도부로 나서야 한다. 역선택을 봉쇄한 100% 당원투표를 통해. 왜, 우리는 주사파를 축출해야 하는가? 주사파와는, 왜, 협치는 고사하고 공존도 불가능한가? 왜, 자유인과 주사파의 아마겟돈 전쟁은 피할 수 없는가?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전복하려는 전체주의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정체(政體), 개방된 시장, 자유 기업, 복수정당제, 기본적 인권 등등을, 파괴하려는 일당독재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한의 세습 신정체제, 기본적 인권 도륙, 정치범 수용소에도 단 한 번의 비판조차 한 적이 없다. 주사파 보고 '진보'라고 말하는 얼치기들 이럼에도, 국민의 힘과 비(非) 좌파 미디어들은, 저들을 시종 ‘진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쪽으로 반쯤 좌클릭하겠다고 한다. 제정신인가? 정통 자유주의 진영은 앞으로, 2024년 총선 이전에 주사파 반(反)헌법세력과 국민의 힘 내부의 바른미래당 흐름, 그리고, 비(非) 좌파 미디어들의 투항적 중간파 노선을 치열한 사상투쟁으로 씻어내야 한다. 사이비 '중도'는 주사파 친구 적(敵)은 둘이다. 주사파와 사이비 중간파. 전사(戰士)는, 대적관(對敵觀)부터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이제는 우파가 일어나야 한다. 사회의 모순을 제거하는 일은 결국 정상적 사상을 가진 민주주의, 자유 경제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바로 세울 때이다. 그래서 혁명은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혁명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피 흘리는 전사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혁명은 아름다운 것이다. 막히고 막힌 자유민주주의 공간을 뚫는 국민의 희열처럼 민주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틀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누구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그 때인 것이다. 한번 붙어 승리를 이루자 그래야만 정통 자유 민주주와 시장경제가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 그래 민주 자유주의 정부를 부정하는 세력과 한번 붙어 정통성을 가진 자유주의 국민의 힘으로 지켜보자.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2022년 10월 22일 말이다. 2022. 10. 22. 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이승섭 개천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 하야와 조국 법무장관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 현장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이승섭]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국정감사 때 야당 의원들 앞에서 바로 이점을 지적한 것이다. 왕년의 학생운동은 주사파 운동이었다. 그 주역들이 그걸 청산한다고 선언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라고 직언한 것이다. 이에 야당은 극도로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김문수 위원장은 소신껏 발언하는 면을 보면서 필자도 그 소신에 찬사를 보낸다. 그는 확실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그는 진보, 보수 좌우를 넘나드는 시대적 경험을 하고 대학 시절에는 근로자로 변신하여 산전수전 겪은 그가 경사노위 위원장을 맡았다는 것은 아마도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있는 윤 정부의 현실을 보여 주었다고 본다. 김문수 경사노 위원장은 그 누구도 소신껏 말하지 못하는 것을 김문수 위원장은 본인의 사상 논리를 전개하였다. 지금 그는 엄청난 사상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건 2020년대 한국 정치사, 사상 투쟁사의 획기적인 모멘텀이 될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진보 좌익을 정면 겨냥 1. 김문수 위원장은, 오늘의 좌익 운동권의 사상적 정체성을 완전히 홀라당 까발리고 있다. 그리고 민족주의자, 가난한 사람 편, 불의에 맞서는 사람 정도로 처신하면서 그럴듯하게 처신을 하고 있다. 그래야 극좌를 꺼리는 대중을 속이고 광범위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문수 위원장은 저들의 이 시커먼 속셈을 적나라하게 벗기고 있다. 운동권은 그래서 김문수 위원장의 폭로에 사생결단으로 대드는 것이다. 저 사람이 우리 장사를 망치려는구나“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 2] 김문수가 누군가? 왕년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노동운동가, 혁명가였다. 그 누구보다도 운동권의 내막과 실태를 환하게 꿰뚫어 보는 도사다. 이런 김문수의 공격이 그들에겐 다른 누구의 공격보다도 뼈아플 수밖에 없다. 이른바 '중도'의 허구성에도 도전 2. 김문수의 투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이번 사상투쟁은, 범우파 내부의 ‘투항적 중간파’의 사이비성, 위선, 오류에 대해서도 뼈 때리는 격파(擊破)가 되고 있다. 범우파 안의 일부는, 극좌 운동권에 공포, 부채의식,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왕년의 권위주의 수혜층 일부, 겁나서 운동권 투사가 되지 못한 데 대해 운동권에 미안한 마음을 품어 온 자들, 회색인들, 운동권 득세에 위축이 된 자들,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완전히 좌익으로 갈 수는 없는 자들인지라, 스스로 ‘중간’ ‘중도’를 자처하며 어중간하게 걸쳐 있다. 이런 유형은 보수 정계에도 있고, 특히 미디어 쪽에 많다. ‘중도’는 물론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중도’는, 좌익에 겁먹고 아첨하는 교활한 처세술에 불과하다. 그들은 극좌를 ‘진보’라고 불러주면서 정통 우파, 아스팔트 자유 행동가들을 ‘극우’라고 모함을 한다. 그들은 운동권의 전체주의 정체성을 눈감아주면서, 그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 아니, 미움을 사지 않는 정도를 넘어 완전히 극좌 혁명 편을 들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실각시킨 촛불 정변 때, 그들은 최선봉에서 가짜 뉴스를 만들고 퍼뜨리고 선동했다. 김문수의 이번 사상투쟁은 극좌 운동권의 민낯을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사이비 우파, 배신 우파, 가짜 중도의 오류도 여지없이 격파하고 있다. ”극좌 운동권은 너희들처럼 다뤄선 안 되고, 나처럼 정면으로 때려 부숴야 한다“는 시범이다. 이런 김문수를 죽인다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에 경고하는 바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 힘이, 만약 김문수 편을 들지 않고 좌익의 반란에 밀린다면? 그러면 그것은 김문수의 죽음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의 죽음이 될 것이다. 김문수는 영웅적 희생타가 될 것이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은 제2의 탄핵 행위처럼 될 것이다. 비(非) 좌파라는 미디어들도, 이번에 또 좌파 편에 서서 행여 김문수에게 등을 돌리면, 그것 또한, 제2의 '탄핵 질'처럼 될 것이다. 김문수는 외롭지 않다. 외롭게 둬서도 안 된다. 그는 전투적 자유 레지스탕스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자유인은 방관자가 되지 말고, 수많은 김문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 힘이 각성해야 한다. 이 시대 자유 투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새삼 깨쳐야 한다. 한심한 그대들, 어떻게 해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것인가? 뻔뻔한 운동권, MBC 조작보도 비판이 언론자유 침탈? 운동권 인식론 "기승전-혁명, 오로지 '변혁'""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그저 이용해 먹을뿐“ 운동권 2개의 무기, MBC 보도 문제에 임하는 운동권의 ’싸움의 방식‘엔, 두 개의 중요한 무기가 있다. 하나는, 자신들의 왜곡과 조작에 대해 전혀 자성, 자책, 자괴하지 않는 철면피 방식이다. 또 하나 무기는, 반대쪽 반론을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무지로 내리깎는 방식이다. 1. 저들은 왜 저렇게 뻔뻔한가? 저들의 그런 ’싸움의 방식‘은 이쪽에서 볼 땐 ’X 뀐 자가 성내는‘ 격이다. 낯 두꺼운 작태다. 그런데도 운동권은, 그걸 수구반동을 때려 부수는 정당하고도 유효한 무기라고 자처한다. 저들의 이런 ’싸움의 방식‘은 어디서 우려 나오는 것일까? 이걸 알아야만, 자유인들은 비로소 제대로 싸울 수 있게 된다. 운동권 사고엔 오로지 혁명뿐 답은 간단하다. 운동권의 인식론(epistemology) 자체가 혁명적 인식론인 탓이다. ”혁명적 인식론이란, 철학적 사유(思惟)의 소임은 세상을 ’해석‘하는 데 있지 않고 ’변혁‘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인식론에 따르면, 현실을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실증적으로,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 대신, 현실을 혁명가의 혁명적 목적에 맞춰, 혁명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재구성하고 재편집해야 한다. 현실을 혁명적인 틀(frame)에 억지로라도 갖다 맞춰야만 한다. 혁명적 목적, 혁명적 요청이란 무엇인가? 한국으로 치면, 극좌 운동권의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NLPDR)이다. 운동권은 이 목적과 요청을 성경 구절처럼 신성불가침으로 본다. 사람의 인식, 언론, 정치, 문화, 노동운동도 모두 이 성스러운 목적과 요청에 두들겨 맞춰야 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조작도, 거짓말도, 억지도, 궤변도, 폭력도, 속임수도, 과장 선동도 불사(不辭)해야 한다. 저들의 낯두꺼움은, 이런 혁명적 인식 방법론에 뿌리박은 것이다. 2. 저들은 반대쪽 비판을 언론자유에 대한 불감증이라 하는데? 좌익 운동권은, 본래 자유주의가 구가하는 언론 출판 결사 집회 양심 표현의 자유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부르주아 독재라 매도한다. 그 대신 저들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 프롤레타리아 일당 독재로 치닫는다. '자유'를 활용해 '자유'를 깨부수려는 수작 이럼에도 저들은 부르주아 체제에 저항하는 도상(途上)에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자유를 십분 써먹는다. 예컨대 저들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만 진정한 자유다“라고 사기 친다. 거짓을 말해놓고도 그걸 비판하면, 표현의 자유를 몰각한 것이라고 생떼를 쓰는 것도, 다, 자유를 활용해 자유를 깨부수려는 수작이다. 이렇게 해서 일단 권력을 잡았다 하면, 그들은 그날부터 본연의 반(反) 자유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입법·행정 사법·문화·언론 등 모든 부문에서 마르크스주의적 당파성으로 치닫는다. 위헌적인 악법도 서슴없이 만들고, 정치적인 판결(判決)도 거침없이 때린다. 나아가 기본적 인권과 자유 체제 자체를 갈아엎는다. "뇌 송송 구멍 탁"이 표현의 자유? 한심한 건, 운동권의 이런 교활한 전략·전술을 우파 안 일부도 간과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산 쇠고길 먹으면, 뇌 송송 구멍 탁" 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이기에, 그걸 나무라는 건 표현의 자유를 모르는 소치다, 어쩌고. 얄팍한 세 치 혓바닥 놀림일 뿐이다. 자유 진영은 요컨대, 시대적 싸움의 의의(意義)를 큰 틀 속에서 파악하는 안목을 키웠으면 한다. 말단(末端)에 드러나 보이는 쟁점에만 코를 박고 몰두하는 나머지, 싸움의 전체상을 보지 못하는 근시(近視)를 주의했으면 한다. 오늘의 조작 보도 싸움에서도 이점은 예외가 아니다. 이점을 윤정부는 새기고 지도자는 항상 결단의 문제 앞에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결국은 정(正)이다. 결국에 이 문제는 민초들의 공유와 더불어 원칙으로 가야 된다는 점이다. 김문수 위원장도 더욱 민초들과 소통하면서 꼿꼿한 선비 정신으로 지금 이 현실에 처해 있는 경사노위를 바로잡아 이 시대의 애국자로서 남기를 바랄뿐이다. 오늘도 북한을 찬양하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해 불가의 말이 떠도는 아우성에 시끄러워 말할 자유가 있는 것은 민주주의 좋은 일이나 듣기에 너무 식상하고 기가 차서 외면뿐이다. 올바른 판단이 없는 멍한 사람들의 바보 놀음에 가치판단이 흐려지는 듯하여 오골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귀가 퇴화하고 입만 커지는 시회는 불행한 사회라는 것을 그들도 깨우치기를 기대한다. 몰 염치한 정서는 결국에는 몰상식의 인간이다. 너무도 답이 없는 이 시대에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의 꼿꼿한 사상을 보면서 오랜만에 한바탕 웃어본다. 참 잘했다. 2022. 10. 17. 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이승섭
by 조숙현[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이승섭] [칼럼]안성시가 지역 최대 현안 사안인 용인SK하이닉스 관련‘부속협약서 공개 문제’와㈜선진이 양성면에 추진 중인 축산식품복합산업단지 관련된‘부작위’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안성시가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소송 결과로 보면 당연히 처리했어야 할 행정을 하지 않아 민원들이 소송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 이번 소송의 판결문들을 보면 안성시가 시민들의 이익을 외면하고,얼마나 우유부단한 행정을 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용인SK하이닉스 관련 부속협약서 공개와 관련한‘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소송의 판결문을 보면 안성시가 주권자인 시민들의 알권리와 정당한 보상이 아닌,용인SK하이닉스의 이익을 보호·대변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하지 않아 주민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그리고 소송 과정에서도SK하이닉스를 위한 억지를 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성시청] 용인SK하이닉스 관련1심 법원은 판결문에서‘보상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지 누구나가 확인할 수 있어야 지역주민 전체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고,항소심에서는 여기에‘부속협약서의 내용이 향후 사업자가 신규 사업장을 건립하고자 할 때 인근 주민들의 요구하는 최소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하더라도 사업자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원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한 마디로 안성시가 공익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고, SK하이닉스의 이익만을 대변해온 것이 드러난 것이다. 안성시가㈜선진에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당해 패소한 양성면의 축산식품복합산업단지는 안성시가 얼마나 우유부단한 행정을 해왔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부작위는 사전적으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아니한다는 의미다. 판결 내용을 보면‘산업단지절차간소화법에는6개월의 승인기간 규정을 두고 있는데,안성시는4년이 경과 해도 승인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은 책임 있는 행정이 아니다’는 것이다. 사업자가2017년 투자의향서를 제출하고2018년 사업 승인 신청했지만,안성시는3명의 시장이 바뀌는 동안 인허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에 법원 역시 안성시가 진행해야 할 행정절차를 미루기만 한다면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용인SK하이닉스와 축산식품복합산업단지 관련 소송은 안성시가 당연히 공개해야 할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당연히 추진해야 할 행정절차를 추진하지 않음으로써 민원인이 소송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어찌 보면,안성시가 소송을 유도했다고 할 수 있다. 안성시가 민원인들이 소송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소송 유도 행정으로 인해 민원인들에게 시간적·경제적 피해를 준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사용되었어야 할 행정력을 소송하는 데 낭비했고,소송비용까지 안성시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부담하게 됐다. 행정기관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소송을 통해 민원을 해결하는 행정은 책임있는 행정을 한 것이라 할 수 없다.시민들을 법정으로 내모는 행정을 해서는 안 된다. 안성시는 관직에 있는 공무원들은 선제적 주인의식을 갖고 모든 행정에 솔선수범으로 공정과 상식으로앞으로는 합리적이고 올바른 법 적용을 통한 책임 있는 행정으로 시민들의 불신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행정을 해주길 바란다. 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이승섭작가 2022.10. 16.
by 수원본부장 손옥자대선과 지선을 내리 이기고도, 당대표를 둘러싼 내홍과 법적다툼 등으로 집권여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던 국민의힘이 최근 '이준석리스크'를 털어내고 심기일전하며 텃밭인 대구·경북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당까지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자 집토끼부터 단속하는 등 방어선 사수에 나선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북한의 도발 국면에서 강경 노선을 강조하는 것 역시, 전통 지지층부터 복원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TK 달래고, 이재명 정조준하는 국힘당] 텃밭 찾은 與지도부 "우리의 마지막 12척" 고개 숙이며 지지호소 13일 첫 전국 순회 현장 회의 장소로 대구·경북을 찾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구시당에서 비대위 회의를 열고 "집권여당 비대위원장으로서 대구·경북 당원 동지들에게 저희들의 지난 부족함으로 걱정을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연이은 내홍으로 정부여당이 제 역할을 못해온 상황에 대해 고개를 숙인 것이다. 최근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보다 부정평가가 더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고 있는데, 당내에서는 이들의 실망이 체감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영남권 소속 의원은 "영남지역에서 정부 출범 초기에 나왔던 열렬한 지지세는 사라졌다고 본다"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측면이 크고 정치 자체를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대구·경북마저 자신들을 외면할 경우 국정운영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 정 비대위원장은 "새로운 각오로 심기일전해서 새롭게 변하기 위해 보수의 중심인 대구·경북에서 첫 현장 비대위 회의를 개최하게 됐다"며 "위기의 순간마다 대구·경북은 우리당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대구·경북은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12척의 배"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역 숙원 사업을 일일이 언급하며 구애에 나서기도 했다. 당 차원에서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 제정, 군위군의 대구 편입,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및 국비 반영 등을 적극 검토하고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영남권에서도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무엇이 변화했냐는 지적이 많은 것 같고, 이는 위기 상황"이라며 "대통령 공약이자 지역 숙원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당의 주요 지지 기반의 민심을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통 지지층에 소구할 수 있는 안보 이슈에 대한 선명성도 더 강화됐다. 정 비대위원장은 "최근 잇따르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그냥 탄도미사일이 아니고 전술핵 미사일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군사 안보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다해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한미군사동맹을 철벽처럼 강화하는 길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한미 양국 간 논의되고 있는 미국의 확장억지력, 쉽게 말해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을 강화해야 되는데, 이런 방안들이 양국 간에 구체적인 중심 현안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 국토위 경기도 국감…與, 이재명 대장동·백현동 의혹 정조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언론자유 방송독립을 위한 언론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언론자유 방송독립을 위한 언론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대구·경북 지역의 지지를 이끌어낸 다음 날인 14일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의 각종 사법리스크를 부각함으로써 보수층 결집을 넘어 중도층 지지까지 얻어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열리는 경기도 국정감사를 벼르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국토위 국감에서 국민의힘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향해 공세를 집중했다. 치명타는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당내에서는 이재명 대표 관련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에는 성공했다는 공감대가 있다. 국토위 소속 의원은 "김동연 경기지사의 경우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정책과 관련된 지적 외에는 큰 공방은 없을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의 경우 출석은 하지 않지만 당사자와 관련된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난해 국감처럼 공격이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국감에서도 국민의힘은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과 관련된 공세를 이어갈 예정이다. 특히, 백현동 개발사업의 경우 지난 7얼 감사원에서 "민간업체에 수천억원을 몰아준 특혜 사업"이라는 감사결과 보고서가 발표됐다. 국민의힘은 관련 의혹을 집중 추궁할 계획인데, 국토위 소속 박정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월 성남시 도시개발사업단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백현동의 임대주택 비중을 10%로 줄이고 일반분양을 90%로 늘리는 계획에 반대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일반분양으로 전환되면서 민간업자가 대거 추가 수익을 거두게 됐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 골자이기 때문에 국민의힘의 공세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의혹의 경우, 새로운 내용을 드러내는 한편 기존에 나왔던 내용을 환기시키기만 해도 민주당에게는 악재일 수밖에 없다"며 "사법 리스크를 부각시키며 이재명은 지지할 수 없다는 국민들이 우리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프랑스 속담에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말을 기억이 난다 속담이란 말 그대로 오래된 말의 숲을 뜻한다. 어디 친구와 포도주만이랴- 묵은 장맛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긍정에 긍정할 것이다. 이른바 씨간장이라 하여 몇십년 몇 대를 거쳐서 내려오는 전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말이다 그 간장 속에는 하늘이 담겨있고 하늘이 푸른 만큼이나 깊은 맛깔이 담겨있음은 가히 경이로울 일이 될 것이다. 시할머니, 또는 시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는 며느리- 종갓집의 며느리의 임무는 그만큼 엄숙했고 법도를 존중하는 마음이 이어지는 끈이 되어 한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는 습속(習俗)이라는데서 서양의 어떤 개념도 따라올 수 없는 우리의 전통이다. T,S.Elio의 <개인적 전통과 재능>이라는 짧은 논문에서 전통은 곧 새로움을 이어가는 줄기임을 암시했고 공자도 생이지지자에서 아비생이지자, 호고민이구자야라는 말로 전통의 묵수(墨守)는 단지 낡은 것의 명칭이 아니라 오늘을 새롭게 받아드리는 줄기의 개념으로 설파 했음은 현명한 사람이 깨닫는 개방된 사고의 소유자만이 느끼는 일일 것이다. 특히 이러한 치졸은 정치판에서 사상이 실종된 자들의 소행이라 한나라의 진로가 암담한 지경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좌파들이 정권을 잡자 본색을 드러내면서 이른바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으로 미운 놈 때려잡자는 행패가 자심(滋甚)했었다. 4대강 문제, 박근혜 탄핵을 하는가 하면 일종의 감옥에 보내는 일환으로 감사라는 명목을 빌려 우를 범하는 일이었으며 현재 윤 정부가 수사하고 있는 원전, 북송, 이재명 대표의 대리 변호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단임제 제도가 갖는 한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돌고 도는 정치가 지속 된다면 과연 앞서나가는 지구촌 정세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의 악순환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아침이 오면 저녁이 오고 밤이 지나면 다시 아침이 온다. 무슨일을 시행하면 사소한 잘못이 없으면 그는 신이지 이간이 아닌 것이다. 적폐 몰이의 주인공도 그런 길이 넓게 열린 사실을 모르는 우매한 정치 놀음을 하는 것이다. 메스컴의 위력이나 떼쓰기의 본보기가 지금도 여일한 수법인지는 믿어 보지만 아직은 글쎄올시다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정치란 처음도 정(正) 즉 바름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전통을 무시하면 곧바로 보복의 악순환이 자기로 돌아오는 부메랑의 화살이 가슴에 비극의 상징이 된다는 점이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무하는 어른이 되어야만 성공한 정부가 되는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곧 현실을 파묻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종부가 씨 간장을 소중히 여기는 것- 시집살이의 고달픔이 없었겠는가? 해도 그런 일들은 추억으로 삼고 좋은 것만을 간직하려는 가상한 마음이 전통의 줄기로 이어질 때 결국 존경의 이름이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부정하기보다 보존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질 때 현명한 수범(垂範)의 정치가 되는 것이지만 권력이 주구(走狗)가 될 때 이미 어긋난 길로 들어간 비극의 단초라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또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정치는 지금 희극을 보는 것인지 난센스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가치의 실종이 너무 심하다. 패당 끼리 놀음을 하는 형국이다. 이는 전통이 부재한 데서 나오는 천박한 사고의 전형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생각의 깊이가 없는 결론이 아니면 다른 답안이 도출될 수 없는 예일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전 정권의 비리들이 뉴스들의 전면을 덮고 있어 참으로 기가 막힐 정도이다. 이제 그런 일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정(正)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오래된 유물은 오래된 시간만큼 소중하고 진중한 보물이 된다는 자각은 최근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는 신호일 것이라 안도하며 정치가는 자기의 영혼을 팔아 권력을 쟁취하지만 결코 역사를 바꾸지 못하는 잠시 왔다 사라지는 하루살이 존재의 길을 선택한 우매한 자들이기 때문에 이름 석자는 이내 사라질 뿐이다. 전통이 없는 사회는 쉽게 무너진다고 했다. 왜 그런가 하면 기둥이 튼실하지 못하면 바람이나 태풍에 틀림없이 쓰러지는 운명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지 누군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통은 가치의 소중함이라는 강조가 오히려 부족하다. 정의가 왜곡될 때 사회의 파장은 오래 길게 간다. 바르게 정리하고 옳게 나아가는 길은 조금 늦더라도 결국은 빠른 지름길이라 한번 어긋나면 바로잡는 시간은 결국 국민의 몫으로 고통이 된다. 학문이 사회, 정치에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면 이미 다른 곳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처참한 상황에 해당 된다. 정치적인 암흑기는 이미 지난 일이다. 고구(考究)한 정치를 해주기를 기대할 뿐이로다. 분노는 안으로 삭여야 한다. 그래야 사물의 실상을 볼 수가 있으며 또 미래의 길이 보일 것이기 때문에 끝없는 자기 수련의 공부가 내공을 갖추지 않으면 자기 화염에 불타는 비극이 자기 것만이 아니라 타인에 전가되는 비극- 전통이 넘쳐나는 우리 사회다 현명한 지도자가 필요한 이유는 결국 국가의 미래와 연결될 것이기에 우리의 전통을 살려 더이상 이게 나라냐 하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2. 09. 29.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 이승섭시인 기흥 호수 공원 [이승섭 시평집 문학의 혼을 말하다.]
by 조숙현금요저널, 강변일보 주필/칼럼리스트/ 문화연구위원/이승섭시인 말이 통하지 않고 거짓말을 밥먹 듯 하는 사람을 불통이라 하며 가면을 쓴 위선자라 할 것이다. 자기 주장만 앞세우고 남의 말은 듣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고집불통이라고 하며 정도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단체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휩쓸려 다니는 사람을 주관이 없는 인간이라고 한다. 맞다. 상식을 벗어나 오로지 자기 정치를 하는 부류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면서 이런 현상에 얼굴이 찌푸려지며 외면을 하게 된다. 참으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슬픔이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넘겨야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사노라면 언젠가는 평원을 만나는 일도 있겠지만 사실 외면하고 거래를 끓는 일이 다반사가 아닌가? 따지고 보면 불통이란 교육의 문제도 아니요, 성격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정서의 층이 너무 얕아지면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 요즘 여당이나 야당이나 하는 짓거리를 보자 필자가 보기에 애국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정치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만 눈에 보이니 참으로 어두운 생각뿐이다. 이것이 진정 세계 10위에 있다는 한국의 정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편만 공정의 논리이지 상대방은 아무리 좋은 대안이라도 거부하고 멸시하는 요즘의 정치를 보면서 아집의 정치, 불통의 정치만이 우리 시대를 좌우지 하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작금의 여당은 젊은 당 대표가 온 나라를 흔들고 있으며 야당은 온갖 비리 의심을 받는 자가 대표를 한다는 등 요란을 떨고 위세를 부리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정서의 층위에 어긋날 때와 불행의 장막이 드리워진다. 정서의 화합만이 답인데 이들은 정서가 메말라 있고 과유불급(過猶不及)에서 나오는 오로지 독선과 아집에 정지되고 있으니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자기를 모르고 위장과 위선만이 판을 치는 세상인지라 그냥 가엾다는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으며 연민만이 드는 것이다. 사람은 많아도 필요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나 정말 나라를 사랑하고 애국을 하는 정치인들이 없는 것인지는 글쎄올시다이다 날마다 반복되며 되풀이 되는 말 잔치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진실이라 우기면서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출세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을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특히 정치가의 말은 거개가 그런 범주에 들어 있어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고 어거지를 쓰고 있으니 참으로 불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서로 싸움질만 하며 네 탓 남 탓 하며 어찌 밝은 미래가 오겠는가? 세계가 요동치고 있고 급변하는 정세 속에 한치 앞을 모르는 현실 앞에 무엇을 하는 짓거리들인지 입에서 쌍욕이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미래는 다가오고 오늘은 내일로 과거가 되듯이 세월은 간다. 이러한 현실에 정신 바짝 차려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서로 싸움만 하지 말고 자신들의 행동 양식에 돌아보며 성찰을 하기 바란다. 예나 지금이나 돌아보면 성찰의 주요 항목은 초심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가슴에 손들을 얻고 성찰을 해보기 바란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이렇게 서로 찢고 싸우고 한다면 앞으로도 절룩이는 미래요. 빈 공허의 미래에 담길 내용물이 없는 혹은 지극히 빈약한 표정을 대면할 수밖에 없는 좌절의 순서는 명백하게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바로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세계를 지니는 마음을 가질 때다. 새로운 IT, 반도체, 제5차 산업을 이루어 후세들에게 물려줄 때이다. 사실 인간은 자기 함정 모순을 피하는 일이 성공의 담보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나를 부풀리는 일이 우선이며 나를 축소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너보다 더 월등하다는 가식보다는 낮음과 겸손한 자세로 인간은 항상 깨어 있는 상태에서 똑바로 걸을 수 있는 정서의 교훈과 성찰할 때이다. 서성이기만 해도 미래는 온다.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 순간에 와버린 미래는 이미 지나가는 이름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포착하고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기회를 확대하는 일은 인간의 임무일 것이다. 물론 미래는 현실의 바탕 위에서 오로지 공고한 성곽을 구축할 수 있기에 현실에 충실할 때만이 미래조차도 쉽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문제만을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로 이어지는 연결 골이 일 경우에만 미래는 우리들의 세상을 구축하는 임무가 주어진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까만 염려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원론적인 미래의 사고에는 나를 이끌고 내일의 높이에 이를 수 있다는 사유(思惟)의 길이보다 명확하게 나타날 것이다. 아무튼 미래의 팽창형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지만 정작 공간의 부족에 현대인들은 욕망을 불태우는 일은 걱정을 달고 사는 일과 같은 일이다. 세평 땅의 누울 자리면 넉넉 하지만 욕망을 위해 끝없이 부풀리는 부동산 투기, 각종 비리, 등은 누구든지 범죄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엉터리들이 많은 인간의 진실을 판별하는 사기한들이 들끊는 오늘의 넘침은 오히려 부족 속에 갈망을 띄운 시절이 더 인간미의 따스함을 가질 수 있었다는 모순의 발판이 넘침의 반대쪽에 있는 실상이다. 넘치는 것에 비례하여 행복은 오히려 줄어드는 이 역설의 벌판에서 현실은 고달픔의 표정을 지으며 울상을 보내는 현실 - 그렇다고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는 것을 주장하는 것도 어설픈 일이다. 다만 넘침에 대한 감사와 자기를 알려는 노력이 선행할 때 발달의 즐거움은 더욱 배가 될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이 기도처럼 깃대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인간의 지혜로 희망을 찾아야 하며 길을 만들며 신념을 일으켜 세우는 불을 켜야만 한다. 무엇일까? 눈이 먼 사람은 지팡이나 길 안내견이 있어야 하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보청기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희망의 지혜로 정서의 불을 켜는 일은 신념의 책을 소화 시켜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는 샘물을 퍼서 올리고 전자파의 충격을 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리곤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정서의 끈을 이어보자 진리는 언제나 미래를 선택하면서 길을 닦고 만들어 가야 하기에 이 원리를 이해하는 순간부터 반성의 나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의 정서로 출발하는 이기적인 사고를 버려질 때 사회 질서가 잡히기에 하는 말이다. 세상 모든 빛은 같다. 그러나 자기 성찰을 하면서 중심을 잡고 미래를 보면서 보편적 가치가 있을 때 균등과 일체화가 수립된다는 점에서 오늘은 어떤 흥미로 미래로 갈 것인가를 우리는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 도약할 시기인 것이다. 속고 속이며 사는 일이 인간사라 할지라도 인간의 속내를 모르고 만나고 살아가는 일이 전부인 바에야 달리 방도가 없기에- 언제나 보편성과 도덕적 상식을 지키는 지혜는 양식으로 공정을 담보한 깨달음이 있다면 자연스레 미래는 환하게 보일 것이다. 인간- 참으로 모순의 얽힘과 설킴에도 자유를 구가한다는 목청에 끼지 못하는 나의 모양은 어리석음일지라도 미래로 나가야 한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을 것이며 굳게 믿으며 거울을 닦듯 내 마음을 닦는 일 그리고 성찰하면서 미래로 가는 일이기를 기대하며 옛 속담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을 믿으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2. 08. 27. 금요저널, 강변일보 주필/칼럼리스트/ 이승섭시인 [죽도 전경]
by 류남신 취재본부장[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 문화연구위원/이승섭시인] 우리가 살면서 모든 것을 잊고 살아야 스트레스가 줄어 둔다고 한다. 요즘은 건강에 유독 중점을 두면서 운동을 하고 모든 몸에 좋다는 건강 보조제는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건강에 좋다는 식품이 광고매체로 부지기수로 쏟아져 나오는 메스컴, 방송, 유튜브 등을 보고 있노라면 은근히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막상 금전적 생각을 하게 되면 다시 또 물러서곤 하는 것이 요즘의 일상이다. 또한 요즘은 망각이라는 법을 제정했으면 어떨까 한다. 그 많은 국회의원 나리들께서 여전히 마음을 바꾸는 것인지 생각을 바꾸는 것인지는 모르나 말에 대한 무게를 너무 가벼이 여겨 아무 말이나 질러 대고 불체포 특권인지는 모르나 책임지지도 못할 말들을 동문서답으로 남발하고 있으니 모두가 이율배반이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날마다 진실만을 말한다고 하지만 정작 어제 일을 잊었다는 듯 태연한 척하는 그들의 두뇌가 나빠서가 아니라 오히려 명석하기 때문에 의도적인 망각의 행동을 일삼는 일은 불신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단면적 현실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지성의 난파가 심하게 흔들리는 우리의 현실 사회에서 우울한 파도와 같은 비유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까? 자기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지조를 파는 일은 아전인수(我田引水)요 매춘부이다. 지금부터 한가지씩 열거해보자 1) 이번 경찰이란 조직이 청화대 민정에서 지시를 받았으나 민정실이 없어졌기에 행안부에서 기존 통제만 행안부 소속으로 둔다는 것인데 명색이 민중의 지팡이라던 경찰이 행안부 소속으론 들어가지 못하겠다 하여 일부 총경들이 반발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찰들은 어디에서 통제를 받겠단 말인가? 자신들이 직접 통제도 받지 않고 대통령도 패싱 하고 그 검찰에서 넘어온 거대한 권력을 자기들 마음대로 행사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사실 이 원인은 검수완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성을 찾기 바란다. 국가를 안정시키는 일은 경찰이 하는 일이고 국가 안보를 지키는 일은 군인들이 하는 것이다. 또한 경찰들은 내적 치안을 맡고 있어 총기를 소지하고 있기에 더욱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국민의 지팡이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정의로운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경찰대학 나온 엘리트라 가뜩이나 경찰대를 졸업하면 과장으로 임용받는다는 특정 세력이라고 비판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고 카르텔을 이루고 있지 읺는가? 이것이 과연 공정과 상식인지는 국민의 판단을 받을 것이다. 2) 또한 각 여당이나 입법을 논하는 국회의원 나리들은 여당은 당 대표가 징계 6개월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목도(目睹)하기가 불견이다. 또한 여당의 원내대표 작자라는 자는 무슨 대통령에게 문자가 왔다고 자랑질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 불가이며 당장 대표자리에서 내려오기를 바란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유치한 메시지까지 자랑질을 하는가? 당장 내려와 국민에게 석고 대죄하고 속죄하고 자숙하기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야당은 대표를 한다고 하는 자가 무슨 사법 리스크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도 대표를 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누구를 탓을 하겠는가? 지금 글로벌 세계 경제가 위축되어 온 나라가 아우성 난리 부르스다. 지금 경제가 이 모양이라면 누군가 앞장서서 자신들 봉급이라도 내려놓아야 할 상황임에도 모두가 경제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 정치나 하고 있고 더구나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대통령 문자나 받아 자랑스럽게 자기 정치나 하고 있으니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3) 지식인들이라 하면서 메스컴, 온갖 언론에 나와 정권의 교체기마다 얼굴을 들고 날뛰는 모양은 가관이지라- 어느 자리에 편승하여 선동하는 일- 4) 민주노총, 언론, 각양각색의 단체들이 민주주의라는 간판을 앞세워 가장 비민주적인 행태를 자행하는 일이 날마다 목도(目睹)는 일이라면 이 나라 모두 불행한 민족 반역의 이름에 값하는 자들이다. 귀족 노조들은 거간 꾼들이며 선동하는 조력자인 것이다. 날마다 위선의 날 선 혓바닥이 쉼이 없이 재잘거리는 일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데 문제라는 것이다. 민주라는 간판 아래 은신하면서 가장 비민주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청맹(靑盲)들의 아우성이 먼 미래의 민족사에 거울로 반영될 것이다. 4) 판문점 사건, 해상 공무원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과거를 모두 청산하여 국민이 공감하는 모두가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우뚝 세워야 할 것이다. 또다시 강조하노니 일제 강점기에 을사오적은 딱히 일제 치하만의 근거가 아니고 시대의 강을 건너는 데에는 항상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남선이 독립선언문을 쓰고 34인으로 서명하라는 한용운의 제의에 “나는 학자로 남고 싶다”는 위선이 결국에는 최남선이 망국의 정신을 빼앗기고 문학적인 업적도 함께 매몰되었다는 시실을 대입해 보면 답은 간명할 것이다. 그때도 한용운은 “나라가 없는데 학자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의 일갈(一喝)에 최남선은 무슨 대답을 했을까? 자신에 몸보신의 처신이 자기를 죽이는 일이라고 깨달았다면 용감하게 죽기로 명문장인 <독립선어서>의 이름이 올랐을 것이다. 지금도 한용운은 옥살이 3년을 마치고 독립의 영웅으로 지금까지 회자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나라 지식인들의 물갈이는 대폭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필자는 지금도 강조하고 주장하는 바이다. 대한민국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말 엄히 다스려 법대로 처리해서 정치가 정치를 한다는 바를 (正)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는 없으며 집단만이 있고 이기적인 사고와 패거리 때문에우리 매스컴과 각종 뉴스의 한복판은 멀미와 외면으로 끝이 없는 듯하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오만은 독선을 낳는 것이며 독선은 국민을 멍들게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법과 정의와 상식으로전환하여 올바른 나라를 기대하지만 대한민국은 반 이성주의에 빠진 지도자들에 의해 이 나라의 애국은 자꾸만 회의에 깊이에 빠져 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이동풍이다. 2022. 07. 27.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 문화연구위원/이승섭시인 [이승섭 시평집 문학의 혼을 말하다] [필자/이승섭칼럼리스트/]
by 조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