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즈아트 HE'S ART 부스에서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으며, 모양과 크기가 다른 건물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연을 곁에 두고 공존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작품명 '한강'은 그림의 중심에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펼쳐진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야기를 밝고 경쾌한 색상으로 즐겁게 표현하였다. 작가는 길을 걷거나, 한강변을 산책할 때, 차를 타고 이동 중에도 사람들의 각양각색 표정을 읽으며 그림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서울과 한강 작품으로 '2024 서울아트쇼' 전시 참여, 서울 작품 1]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심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함께 살아가야하는 공동체가 사랑과 행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염원도 담았다. '서울' 작품은 빼곡한 건물들 속에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렸지만 나름의 질서와 인간적인 온화한 심성들이 배경되어 각자가 꿈꾸는 목표로 도달하기를 바라고, 각박한 세상 보다 배려하는 사회가 되어 살만한 이웃이 되기를 희망했다. [서울과 한강 작품으로 '2024 서울아트쇼' 전시 참여 서울 2] 이미지를 구분 짓는 명확한 경계선은 서로의 마음에 장벽을 허물고 싶은 생각을 역설적으로 구현해 보았다. 1250도의 가마 소성으로 제작된 도판에 상회 안료로 채색하여 완성된 작품과 800도 소성된 도판에 오일파스텔 및 아크릴로 채색하고 완료하는 여러 가지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이 도자화 매력을 알리는 기회도 되고 있다. 서울과 한강 작품으로 '2024 서울아트쇼' 전시 참여서울 3] 변하지 않는 도자화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소성 과정을 중요시하고, 가마에서 나오는 작품의 탄생이 흥분과 기대감이라는 감정으로 귀결되어 창작의지를 고취시켜 준다. [서울과 한강 작품으로 '2024 서울아트쇼' 전시 참여 한강 1] '2024 서울아트쇼'에 참가하는 장정은 작가는 "평소 가진 생각을 쉽고 재미있게 작품으로 만들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듯 관람객에게 작품의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 [서울과 한강 작품으로 '2024 서울아트쇼' 전시 참여 한강 2] 특히 도판의 생소함이 있을 수 있지만 신선함으로 느낄 수 있도록 우리들의 삶을 솔직하게 표현해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과 한강 작품으로 '2024 서울아트쇼' 전시 참여 한강 3] 작가는 세종대 대학원 도자회화과 출신으로 현재 (사)한국미술협회, 한국전업미술가협회 회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진행 중에 있다.
화성시아름장애인보호작업장 동탄점(지성근 원장)이 12월 20일(금) 삼영잉크페인트제조주식회사(대표 이강년·부사장 코지마노보루·본부장 김영선)에 감사패 전달식 및 후원금 전달식을 진행했다. 삼영잉크페인트제조주식회사는 2024년 7월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인 자원봉사자 파견과 후원금 등 시설에 물심양면 지원중인 기업체이다. 삼영잉크페인트제조(주)는 시설 근로장애인들을 위해 나눔과 따듯한 사랑을 실천하며 장애인복지증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지구촌사회복지재단 화성시아름장애인보호작업장동탄점-삼영잉크페인트제조주식회사 감사패 전달 1] 또한, 삼영잉크페인트제조(주) 이강년 대표는 중증장애인 직업재활을 위하여 1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하였다. 이번 후원금은 화성시아름장애인보호작업장동탄점 이용장애인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삼영잉크페인트제조주식회사 이강년 대표는 “중증장애인들의 직업재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원금을 전달하게 되었다.”며 “앞으로도 중증장애인들의 직업재활을 위해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회공헌이 진행될 수 있도록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지구촌사회복지재단 화성시아름장애인보호작업장동탄점-삼영잉크페인트제조주식회사 감사패 전달 2] 화성시아름장애인보호작업장 동탄점 지성근 원장은 “올 한해 우리 지역사회의 장애인 당자자를 위해 연대하고 함께 동행할 수 있어서 기쁘다며 앞으로 삼영잉크 활동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화성시아름장애인보호작업장동탄점은 2019년 9월, 화성시가 설립하고 사회복지법인 지구촌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장애인복지시설로 장애정도가 심한 발달장애인 20명에게 보호고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요저널] 광복회광명시지회는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90주년을 맞아 4월 20일 오후 6시 광명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초빙해 강연회를 개최한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왕 쇼와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수뇌부를 응징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현장에서 체포된 윤 의사는 그해 12월 19일 가나자와 미고우시 일본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어 2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광복 후인 1946년 조국에 봉환되어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는 윤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강연을 맡은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많은 역사서를 저술하며 중국의 동북공정과 임나일본부설의 부당성을 역사적 고증자료로 반박하는 등 우리역사 바로알기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날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와 상하이 의거 관련해서 강연을 진행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김충한 광복회광명시지회장은 “이번 강연회에 많은 시민이 참석해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에 대해 함께 고찰하고 역사인식과 나라사랑 정신 함양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 전했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금요저널] 가락국 제10대 구형왕과 계화왕후를 추모하는 제례인 덕양전 춘향대제가 지난 16일 산청군 금서면 덕양전에서 봉행됐다. 이날 제례는 이상률 경남경찰청장이 초헌관, 전보삼 전 문체부 문학진흥정책위원원장, 김길수 경남문화원연합회장이 종헌관으로 봉행 헌작했다. 또 지역 기관단체장과 전국 가락 문중·유림 등이 참석했다. 가야시대 대표 유적지 중 한곳인 덕양전은 지난 1983년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됐다. 덕양전은 인덕문과 함께 직사각형의 돌담을 두르고 그 안에 홍살문, 영전각, 안향각, 추모재, 동재, 서재, 해산루 등 건물이 들어서 있다. 경남도 우수 선현제례 행사로 선정된 덕양전 춘·추향대제는 매년 음력 3월 16일과 음력 9월 16일에 봉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덕양전에서는 매월 음력 초하루, 보름에 삭망향례를 올림으로써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返葬)하지 말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우리들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여한이 없겠노라." -순국 직전 동포들에게 남긴 의사의 마지막 유언- 〈장부가[丈夫歌]〉 丈夫處世兮 其志大矣장부가 셰상에 쳐ᄒᆞᆷ이여 그 ᄯᅳᆺ이 크도다 (장부가 세상에 있음이여,그 뜻이 크도다.) 時造英雄兮 英雄造時ᄯᆡ가 령웅을 지음이여 령웅이 ᄯᆡᄅᆞᆯ 지으리로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雄視天下兮 何日成業텬하ᄅᆞᆯ 웅시ᄒᆞᆷ이여 어니 날에 업을 일울고 (천하를 웅시함이여,어느 날에 업을 이룰꼬.) 東風漸寒兮 壯士義烈동풍이 졈드 차미여 쟝사에 의긔가 ᄯᅳ겁도다 (동풍이 점점 참이여,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憤慨一去兮 必成目的분ᄀᆡ히 한 번 가미여 반다시 목젹을 이루리로다 (분개히 한 번 감이여,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鼠竊○○兮 豈肯比命쥐 도젹○○이여 엇지 즐겨 목숨을 비길고 (쥐 도적○○이여,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꼬.) 豈度至此兮 事勢固然엇지 이에 이ᄅᆞᆯ 쥴을 시아려스리요 사셰가 고여하도다 (어찌 이에 이를 줄을 헤아렸으리오,사세가 본디 그러하도다.) 同胞同胞兮 速成大業동포 동포여 속히 ᄃᆡ업을 이룰지어다 (동포,동포여,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萬歲萬歲兮 大韓獨立만셰 만셰여 ᄃᆡ한 독립이로다 (만세,만세여,대한 독립이로다.) 萬歲萬歲兮 大韓同胞만셰 만셰여 ᄃᆡ한 동포로다 (만세,만세여,대한 동포로다.) -안중근이 의거를 거행하기 전 동지 우덕순에게 지어준〈장부가〉- 안중근(安重根)의사는1879년9월2일 황해도 해주부 광석동에서 태어났다.본관은 순흥이고,아명은 응칠(應七)이며,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도마)이다.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전형적인 향반(鄕班)지주였다.즉,고려말 대유학자 안향의 후예로 조부 안인수는 진해현감,부친 안태훈은 소과에 합격한 진사로 대지주였다.특히 부친인 안태훈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해서(海西)일대에서 문명을 날리고 있었는데,안중근 의사는 바로 이 안태훈 진사와 그 부인 조(趙)마리아 사이에 태어난3남1녀 가운데 장남이었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며 사격·승마·궁술 등 문무(文武)를 고루 익혔다. 1894년 결혼, 2남1녀를 두고1895년 천주교에 입교한 후,아버지와 함께 빌렘(Wilhelm,洪錫九)신부를 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전교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뮈텔(Mutel,閔德孝)주교에게 민족교육을 위한 대학 설립을 건의하였으나 거절당하고1907년 진남포에 삼흥학교(三興學校),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운 뒤 북간도를 거쳐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이는 국외에서 의군을 조직하여 독립전쟁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것이었다.이를 위해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 일대의 한인촌을 유세하였으며, 1908년3월에는 연해주 한인사회의 인심통합과 단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인심결합론」이라는 글을 『해조신문』에 기고하기도 하였다.이를 통해 의군(義軍)을 모집하여,연해주 한인사회의 지도적 인물이자 거부인 최재형과 주 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재정적 지원으로1908년4월 연추(煙秋)얀치혜에서 동의회(同義會)라는 항일 의군을 조직하였다. 총장 최재형,부총장 이범윤,회장 이위종,평의원 안중근 등이었다.이 동의회는 실질적으로는 발기인이자 우영장(右營將)이었던 안중근 의사가 이끌었다.의군부대의 규모는3백 명 정도로 두만강 부근의 연해주 연추를 근거지로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였다.1909년2월 연해주 연추 하리 마을에서 동지11명과 함께 단지동맹을 조직하여 왼쪽 넷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자르고“大韓獨立”이라는 혈서를 써서 구국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09년9월 안중근 의사는 대동공보사에 들렀다가 일본의 초대 총리와 한국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만주를 시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안중근 의사는 한국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파괴자인 이토가 이제 만주 침략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이를 묵과할 수는 없었다.국권회복을 위해서도,동양평화를 위해서도 그냥 보아 넘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그리고 지체 없이 이토를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 작업을 진행시켰다. 이때 큰 도움을 준 인물들은 대동공보사의 인사들이었다.최재형,유진률,이강,우덕순 등이 그들이다.그중 대동공보사 집금회계원인 우덕순은 안중근 의사와 뜻을 같이하기로 자원하였다.이들의 지원 아래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제거할 목적으로10월21일 우덕순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여 하얼빈으로 향하였다.도중에 안중근 의사 일행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포그라니치나야(수분하)에서 유동하를 가담시키고 하얼빈에 도착한 뒤,대동공보사 하얼빈 지국장 김형재의 소개로 조도선을 거사에 합류시켰다. 10월23일 김성백의 집에서 안중근 의사는 의거 결의를 담은“장부가”를 지었고,우덕순도“거의가”를 지어 화답하였다. 안중근 의사는10월26일 새벽 하얼빈역으로 나가 러시아 병사들의 경비망을 교묘히 뚫고 역구내 찻집에서 이토의 도착을 기다렸다.드디어 오전9시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하였다.이토는 환영 나온 러시아의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열차 안에서 약30분간 회담을 갖고, 9시30분 경 코코프체프의 인도로 플랫폼에 도열한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였다.그리고 다시 귀빈 열차 쪽으로 향하여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때 의장대의 후방에서 앞으로 뛰어나가며 브라우닝 권총(FN M1900) 4발을 발사해 이토에게3발의 총탄을 명중시켜 이토를 쓰러뜨렸다.이어서3발의 총탄을 더 발사하였다.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궁내대신 비서관 모리,만주철도 이사 다나카 등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당시 러시아군에 의해 체포될 때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어로"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다.이토는 열차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결국 절명하였다.그리하여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평화의 파괴자인 이토는 안중근 의사에 의해 단죄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의거 성공 이후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일본영사관을 거쳐 뤼순에 있던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 송치되었다.그리고 여기에서1910년2월7일부터14일에 이르기까지6회에 걸쳐 재판을 받았다.그러나 일제는 국제 재판을 표방하면서도 일본인 관선변호사만을 허용하는 등 불법 재판을 강행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검사 신문에 이어 재판정에서도 당당하게 의거의 이유와 정당성을 주장하며“이토 히로부미 죄악15개조”를 밝혔다.일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의 통치 정책을 오해하여 저지른 개인적인 살인행위로 몰아가려 하였다.이에 맞서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와 한국독립을 위해 의거를 일으켰다는 대의를 밝히며 자신을 만국공법에 입각한 전쟁포로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했다.이에 일본인 관선변호사조차 안중근에 대한 사형선고는 부당하다며 적극 변호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 재판부는“안중근에게 극형을 내리라”는 일본 외무성의 사전 지령에 따라2월14일 공판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각본대로 사형을 선고하였다.당시 안중근 의사는“일본에는 사형 이상의 형벌은 없는가?”라고 반문하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재판 중 자신은 독립전쟁을 수행하다가 체포된 포로일 뿐이며 자신의 행위는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의 대의를 위한 정당한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 평화의 길은, "첫째 일본이 우선 한국의 국권을 되돌려 주고,둘째 만주와 청국에 대한 침략의 야욕을 버리는 것이며,셋째 그런 다음 서로'독립한'청국,한국,일본이 동맹하여 서양세력을 방어하며,서로 동맹하여 평화를 부르짖고,서로 화합하여 개화와 진보로 나가서 구주 및 세계 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한국의 독립과 일제의 침략 야욕 포기가 동양평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져야 동양에 평화가 깃들며 서구와의 평화 공존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1910년3월26일 순국 당일 뤼순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어머니가 보내준 흰색 명주 한복을 입은 안중근 의사는 남기고 싶은 유언이 있느냐는 형무소장의 물음에“아무 것도 남길 말은 없으나,다만 내가 한 이토 사살을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므로,한일 양국이 협력하여 동양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당부를 하였다.이어‘동양평화 만세’삼창을 하려 하니 특별히 허락해달라는 요청이 거부되자 약2분간 기도를 올리고 의연하게 교수대로 올라갔다.이처럼 안중근 의사는 눈 앞에 죽음이 닥쳐와도 초연함을 잃지 않고 오직 한국의 독립과 동포의 안녕을 걱정했던 애국지사이자 동양평화를 염원했던 위대한 평화사상가였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후 일제는 정근,공근 두 동생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유해를 인도하지 않았다.안중근 의사의 묘소가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따라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비밀리에 뤼순감옥 공동묘지에 묻혔고 아직까지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른 채 고국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국내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효창공원에 마련되어 있으며 정부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 그 자체는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교육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무장독립운동 등을 펼쳤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 대한의 독립뿐만 아니라,온 인류가 평화 속에서 공존공영해 나갈 수 있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제시해 주었다.하얼빈 의거일인1909년10월26일은 공교롭게도70년뒤인1979년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총으로 쏜 사건인10.26사건과 날짜가 같다.둘다 총으로 벌인 암살이고 같은 탄약(32 ACP)이 쓰였으며,한국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하얼빈 의거는 동양평화론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한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나아가 일본을 위한 의거였다.오늘날 일본,중국에서도 안중근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그러한 사실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외롭게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며 동양평화를 추구했던 그는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이자 진정한 평화주의자였으며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통해 독립운동가만으로서가 아닌 교육자 및계몽운동가로동양평화를 주장한 사상가로 재조명되고 있다.
by 김수한(서울취재본부장){김수한 : 역사컬럼니스트} 단재(丹齋)신채호(申采浩)의 민족독립정신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아(我)’와‘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단재(丹齋)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고령신씨(高靈申氏)로서,신숙주(申叔舟,1417-1475)의18세손이다. 1880년12월8일 충청남도 대덕군 정생면 익동 도림리에서 출생하여1936년2월21일,북풍이 몰아치는 여순 감옥에서 고난에 찬 독립투쟁가의 일생을 마쳤다. 당시 그의 나이 쉰일곱 살로 일제에 대한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던 중 체포되어10년의 실형을 선고받고8년째 복역하다 옥중에서 순국한 것이다.조국광복의 꿈을 안고 중국에 망명한 지26년,상하이와 베이징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 등지를 오가며 잃어버린 우리 역사의 흔적을 더듬고 민족혼을 깨우치던 사학자요,언론인이며 혁명가인 신채호는 결국 해방 조국의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독립운동가로서 단재의 정신은 절대독립론,무장투쟁론,민족혁명론(민중직접혁명론)등 세가지 형태로 표현된다.단재의 절대독립론은3·1운동 후에 대두한 자치론·내정독립론·참정권론 등 일제와의 타협주의를 분쇄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우리 나라 독립운동에 있어1920년대 특징의 하나는 국내의 민족주의 독립운동 노선의 일부에 조국의 완전독립을 체념하고 대일본제국 내의 조선자치구역을 추구하는 자치론자들이 대두한 것이었다.이들은 일제와의 타협론을 제창함으로써 완전독립론과 자치론 사이에 대립·투쟁을 야기시켰다.즉,이러한 자치론의 대두는 독립운동 노선에 혼선을 가져오고,일제에 대항하여 굳건히 서야 할 독립운동 노선을 비틀거리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단재의 절대독립론은 완전독립론과 자치론의 대립·투쟁에서 완전독립론·절대독립론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비틀거리던 독립운동노선을 바로 잡아주고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갈 길을 명료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단재의 조선혁명선언을 통해서 극명하게 선언된 절대독립론은1927년에 자치론을 철저히 분쇄하고 절대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의 노선을 정립하는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단재의 무장투쟁론과 민족혁명론은 강도와 같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해서는 폭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투쟁이 정당함을 가르쳐주어 그 후의 민족주의 독립운동의 방법적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의열단뿐만 아니라 김구의 상해 임시정부까지도 단재가 합리화하고 정당화한 무장투쟁 수단을 채용하게 된 것은 단재의 조선혁명선언에서 천명한 독립운동 방략과 깊이 관련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변절과 투항으로 얼룩진 일제하 이 땅의 지식인들의 행적을 뒤돌아볼 때 비타협적 투쟁으로 일관해온 신채호의 정신과 생애는 우리에게 민족과 독립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 한다.
by 김수한(서울취재본부장)‘송송’ 썰리는 청양고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성인 남자가 두 팔로 겨우 감싸 안을 정도인 지름 150㎝의 거대한 가마솥에서 ‘모락모락’ 나는 수증기가 구수한 순댓국 냄새와 함께 가게 안으로 퍼지자 군침이 절로 돌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방영선 수원 A순대국 대표(48)는 육수가 푹 고아졌는지, 가마솥 뚜껑을 열어봤다. 직원 김선실씨, 방선자씨는 음식 재료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방 대표는 이처럼 정성을 들여 만든 순댓국을 정자3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매달 홀몸 노인 등 관내 저소득층 가구 20여명에게 전달하고 있다. [지역 홀몸노인, 저소득 가구에 순댓국을 무료로 전달해 온 방영선 대표(가운데)와 직원들 이 환한 표정으로 순댓국을 들어보이고 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 등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가진 나눔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특히 감성적인 성격의 방 대표는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룬 TV프로그램을 즐겨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며 이 같은 다짐을 되새겼다. 이를 실천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대학 진학 대신 취업 전선에 뛰어든 방 대표는 주방보조 등 밑바닥부터 일하다가 지난 2019년 A순대국을 인수했다. 직원에서 사장으로 호칭만 변경됐을 뿐 병원 갈 시간도 없는 등 바쁜 건 매한가지였다. 다만, 순대국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결정 권한은 생겼다. 비록 자신과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일로 음식을 직접 배달하지 못해 소외계층의 반응을 몰라도 정자3동 행정복지센터 직원들로부터 ‘할머니가 아주 맛있게 드셨어요’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없던 기운도 생겼다. 순댓국을 더 맛있게 끓이고 싶다는 생각에 오늘도 오전 9시에 가게에 나와 육수가 진해졌는지 살폈다. 이 때문에 달력에 ‘순댓국 봉사’라는 글귀를 적을 때 설렌다. 가족과 같은 단골손님들이 “좋은 일한다”며 치켜세우면 쑥스럽기도 하면서도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나눔 실천의 의지를 되뇌였다. 방 대표는 “사정상 직접 배달하지 못함에도 동사무소 직원들이 대신 순댓국을 갖다주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 그들이 없다면 이러한 일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옛날에는 연말연시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구세군 냄비가 가득했는데, 점점 사회가 각박해지는 거 같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어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저도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살 수 있다”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 순댓국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 이승섭시인 1. 문학 현상 대한민국의 문학은 농경사회인 18세기~19세기 산업화 혁명의 여파는 급진적 급속하게 인간 문학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어 산업화와 함께 자동차, 전기 등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3차 산업, 4차 산업의 토대와 전기가 마련되었고 1943년 컴퓨터 등장과 1976년 스티브 잡스의 위즈니악이 차고에서 PC의 발명은 인간의 문화를 획기적인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컴퓨터의 출연으로 터치의 문학도 급속도로 전환 되었다는 점이고 여기서 우리가 관과 할 수 없는 현상은 Pen문화에서 Power⤍Man의 중심문화가 컴퓨터의 자판- 터치로 넘어오는 시기에 여성의 중심으로 전환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전환점을 맞는다. 사회 전반의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졌으며 모든 분야에서 석권하는 이유는 Power의 남성이 아닌 섬세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역할이 터치의 역할로 컴퓨터의 자판에 유리한 여성의 장점에서 더욱 눈부신 장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볼 수 있겠다. 문학의 발전 속도는 100년이라는 단위에서 30년을 지나 컴퓨터의 등장으로 단 3년이면 과거의 100년 변화와 맛 먹는 진전을 이루어 있고 점점 짧아지는 추세를 감당하고 어려운 복잡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이른바 4차 산업 혁명의 여파를 운위하는 중심에는 AI와 인간의 문화 - 기계와 인간의 문화 현상이 나란히 동행하면서 진행 되어지고 있다. 심지어 종교 조차도 금기가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지구를 움직이는 서방국가들과 주도적으로 기술이 앞서 나가는 미국, 영국 등은 AI라는 종교까지 등장했다고 몇 년 전 들은 바 있다. 오늘의 인간은 점차 신(新)원시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국의 IT매체인 외이어드(Wired)sms 구글 출신의 엔지니어 앤서니 래반도브스키 (41.Anthony Levandowski)가 “미래의 길”(way of the futer)이라는 이름의 AI 교회를 설립했다. 교회의 목적은 “인공지능에 기반에서 신격의 실현을 개발하고 촉진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기여 하고자 한다고 한다.” 이 교회는 구글에 재직하고 있던 2015년 09월에 설립, 종교단체에 부여되는 면세 혜택을 당국에 요청하면서 2017년 실체가 밝혀졌다. 인공지능이 설교하는 것은 아마도 정치(情致)하고 합리적인 설교에 빈틈이 없을 것이라는데 이른다고 하니 모골이 송연하고 아찔하다. 물론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니, 기미스 히사비스가 개발한 알파고와 바둑대결 이후에 여러 분야에서 경천동지할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놀랄 일도 아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 저술한 <특이점 singulalty>에서 2029년에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 컴퓨터가 등장하고 2045년에는 기계가 인류를 넘어서는 특이점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런 추세를 추적하면 필연적으로 기존의 직업군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본다. 인간 대신에 컴퓨터가 수술을 하고 변호사, 판사, 회계사, 금융사무원, 의사의 직업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사물 인터넷전문가, 인공지능전문가, 빅데이터 전문가, 가상현실전문가, 3디 프린팅 전문가, 드론전문가, 생명공학자, 로봇공학자 전문가, 등이 유망직업군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가히 어떤 가상 현실이 올지는 누구도 장담 못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여지는 기계가 할 수 없는 상상력의 분야는 앞으로 생생하게 살아남을 것이라 누구나 말을 하고 있다. 2. 상상력의 미래 예술은 앞으로 주목을 받을 유일한 탈출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 소설, 평론, 희곡 등 장르에서는 구조(plot)의 분야- 소설이나 시나리오는 이미 로봇이 쓸 수 있는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2016년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니온게이자이 신문사가 주최하는 sf 소설 공모전에서 1심을 통과했다는 보도는 들었지만 2차에서 낙선했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은 어느 작품이 인공지능 작품인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심사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시나 수필 등은 살아남을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시-4600년 전에 티그라스,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수메르 문화의 유적지에 우르크 왕조 5대 왕인 길가메쉬의 신화를 점성토 636 장에 수메르어로 쓴 서사시인 영웅<길가메쉬>를 필두로 시의 길이 시작 되었다. 이보다 2 천년 뒤 기원전 600~700년 전에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이후 시의 발전은 인간 지혜의 발현(發現)으로 이어왔고, 이제 그런 현상이 4차 산업의 혁명적인 여지는 문학에도 엄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혁이 가능할 것이라 보는 것이다. 예술에서 가장 보수적인 분야가 문학이라면 보다 속히 그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치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사고는 단순하고 단편적이고 장편을 외면한다. 여기서 시 또한 장시이기보다는 짧은 서정시의 아포리즘적(짧은글)인 현상이 기호를 자극할 것이다. 과거의 명작은 점차 읽히지 않는 추세는 오래된 현상이 되어 버렸고 서정시는 이런 견지에서 문학의 중심을 떠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지 않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서정시의 계보는 매우 장황하다 못해 우후죽순이다. 본격적인 단초는 BC 7세기 알카이오스와 그리스의 노래를 담은 도리아 지방의 여성 시인 사포오와 로마에서는 BC 1세기 카룰로스와 호라티우스가 서정시를 그렸고, 이어지는 르네상스 시대엔 폐트라르카, 섹익스피어, 에드먼드 스펜서, 죤 밀턴 등의 서정시로 14행 소네트의 두드러진 발전에 이어 18세기 말과 19세기에는 낭만파 시인들인 로버트 번즈, 윌리엄 블레이크, 윌리엄 워즈위즈, 키츠, 셀리, 위고, 괴테 등으로 계보가 이어졌고 19세기 말과 20세기는 대부분 서정시가 주류를 형성하면서 발전의 계기를 이어왔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서정시는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로 시작된다. 왕비 송씨가 죽자 화회와 치희를 후실로 맞았으나 질투로 치희가 궁궐을 나간 외로움을 사이좋은 꾀꼬리에 비유한 서정시의 원조가 이별의 노래로 담아지는 내용이다. 5세기 신라의 향가 25수와 고려 가요인 <가시리>와 조선의 3음 중심의 양반 노래인 시조(13~14) 등은 우리나라 서정시의 맥을 이어온 전통의 가락이 아니었나 보는 것이다. 사실 이 시기에는 양반들의 시가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현대에 들어 1908년 잡지<소년>에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마리로 주제를 삼지만 이보다 10년 전 1898년 협성화보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고목가>라 할 수 있겠다. 슬프다, 저 나무 늙었네 병들고 썩어서 반만 서있네 심악한 비바람 이리저리 급히 쳐 몇백 년 큰 남기 오늘 위태(롭도다) 원수의 땃 짝새 밑을 쪼네 미욱한 저 새야 조지(쪼지) 마라 조고 또 조다가 고목이 부러지면 네 처자 네 몸은 어디 의지(依支)(할꼬) 버티세, 버티세, 저 고목을 뿌리만 굳 박혀 반근(盤根)되면 새 가지 새잎이 다시 영화(榮華) 봄 되면 강근(强近)이 자란 뒤 풍우 불외(不畏)하리라 쏘아라, 저 포수 땃 짝새를 원수의 저 미물, 남글 쪼아 비바람을 도와 위망(危亡)을 재촉하여 넘어지게 하니 어찌할꼬? 외세<일제시대>를 딱따구리로 보면서 쓰러지려는 고목을 대한민국의 처지로 상징하는 노래는 절절한 애국심이 오히려 어쩌다 시인이 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생각과는 정신적인 집중이 층위가 완전 다른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1년 봄, 부산에서 <전쟁 중의 봄> 연작 시조를 그렸다 강산을 바라보매 진치는 연기 자욱하고 되 기빨 양 돛대 봄 하늘을 가리웠는데 집 없이 떠도는 이들 생쌀만 씹고 다닌다. 거리엔 벽만 우뚝 선 마슬엔 새 밭 메고 전쟁이야 멀건 말건 봄바람 불어 들어 피 흘려 싸우던 들에 속잎 돋아 나온다. 이승만 대통령은 빼어난 한시(漢詩)시인이었음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50년대 말 창경원에서 전국 시조 대회를 열고 직접 시제(詩題)를 내기도 했으니 대단한 시조 대통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0년대에 오면 김소월과 한용운은 당시 시단의 주류가 아니고 사실은 아웃사이더였다. 설익은 외국 상징주의 흉내로 명맥을 이어온 한국 서정시는 1930년대 후반 “시 문학파와 인생파” 등에 이르러 본격적인 모양으로 출발을 했으며 이러한 명맥이 1960년대의 소용돌이와 70년대 민중문학 소용돌이에서 서정시인들은 위축과 민중문학에 의해 뒤 켠으로 물러난 시대의 강을 넘어왔다고 필자는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민중문학의 맹장들의 거처인 <창비>의 <문지> 등의 중심세력들이 문단의 목청이 너무 큰 사람들이 장악한 한국 서정시의 맥락은 침체와 의기소침, 위태로운 강을 비틀거리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라 보는 것이다. 민중문학의 이론가라고 하는 백낙천이나 고은 등 문단의 거목 행세로 노벨 문학상이라는 허풍을 부풀린 거품의 본질이 아닌가 보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작품성은 민중 타령으로 작품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이란 휴머니즘의 사상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이 사람들은 아우성과 민중 이외에는 찾을 것이 없다는 점이 비극 표현의 몰락의 길을 걸었지 않았나 필자는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아픔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2017년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 Harvey Weinstein을 최초 고발한 애슐리 쥬드의 mee too의 파도에 좌초된 현상이 그 얼마나 허약하고 빈약한지 부풀리기 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문학은 문학성이라는 것이 생명을 키우는 것이 절대 요소이기 때문에 허세와 풍선은 언젠가 터지는 것이 당연한 논리인 것이다. 3. 문학이라는 땅 인간은 자연이 일부인 것이다. 물론 인간 갖고 있는 모태는 자기 자신이 얼마만큼의 자연과 하나가 되느냐의 따라서 달라진다. 자연이 주는 일부는 인간이 소유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수용과 공감을 한다. 그러나 서양의 자연과 동양의 자연은 다르다. 서양은 정복으로의 자연관이며 동양은 조화(調和)로의 자연일 때 서로 접근 방법이 다르다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본다면 서양의 사상과 동양 사상의 합일점은 4차산업혁명의 여파 속에서 어떤 것이 더 생명력을 상상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현실에 있어 동서양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미 세계는 이미 하나의 지구촌 생활 속으로 모든 것이 통합이 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섭의 학문, 통섭의 여파로 문학 또한 그런 경우로 접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의 창조에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것이 딥마인드의 로봇과의 시합에서 인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여 상상력이라는 것은 깨우침의 훈련으로 그 높이를 더욱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뇌의 인간화를 강조하게 된다. 물론 사고에서 상상을 새로운 시발점이 가지를 만날 수 있고 숲을 만나 상상에서 또 다른 상상의 경지를 가질 때 인간의 문화에 중심 역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상의 원천은 시(Poem, Poetry)를 강조하는 이유가 나변(那邊)은 아닌 것이다. 문학의 출발은 인간의 일을 기록하는 일이지만 본질은 인간의 사랑인 휴머니즘의 영원한 명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세익스피어나 톨스토이 작품을 읽어도 그렇고 위대한 사상가의 작품 속에는 한결같이 사랑의 이름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방법을 말하는 이야기들이다. 허접한 정치에 매달려 이데올로기의 간판도 아니며 타령조의 애소(哀訴)도 아니며 오로지 인간의 본질에 이르는 문제인 사랑의 길을 찾고 말하는 일이 문학의 숙명이자 길이라는 점에서 시는 그런 상상의 원천에 도달하려는 창조라는 점에서 종교를 대신하는 것은 바로 시(詩)다 라는 매쉬 아놀드의 말을 숙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4. 시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인지- 아미 로우엘은 “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에 ‘모른다’는 단순한 대답이었다. 이는 인간의 창조적인 근원을 묻는 일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시가 서로 모순되는 사상들의 융합인지를 묻는 영국 시인 그레이브스와 미국의 여류시인 새러 티스데일이 말한 흥분과 긴장의 결과요 해소라는 주장과 백일몽에 가까운 심리적인 상태의 몰입으로 말한 프레스콧의 말 등 한가지로 통일된 정의는 없다. 그러나 잠재된 신비의 상태를 필자가 보는 견지에서는 접신(接神) 즉 무아지경의 신비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공자가 말한 시경을 두고 시 300수를 한마디로 사무사(思毋邪)라는 말에는 무아경의 깊이가 없고 현상적 사실을 정리한 뜻에 불과 하다고 말들 하지만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의 길을 재촉하는 일이고 독자 또한 시인이 쓴 시를 통해 상상의 또 다른 창조의 추체험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시의 역할은 처음부터 끝까지 창조의 상상을 만드는 길일 것이라는데 진리가 되지 않을까? 미래의 문화 현상 또한 밑바탕 위에서 새로움을 구축하는 일이 문화의 근간을 이르는 인간의 절차탁마(切磋琢磨)만이 상상력이라는 결론에서 본다면 앞으로도 시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는 말로 정리될 것 같다고 확신하면서 나가려 한다. 2022. 10. 02. 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 이승섭 시인 {이승섭 시평집}[문학의 혼을 말하다.] 이승섭 제 4 시집[때론 눈물이 길을 묻는다.] (2) [평택호에서 필자]
by 류남신 취재본부장[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프랑스 속담에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말을 기억이 난다 속담이란 말 그대로 오래된 말의 숲을 뜻한다. 어디 친구와 포도주만이랴- 묵은 장맛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긍정에 긍정할 것이다. 이른바 씨간장이라 하여 몇십년 몇 대를 거쳐서 내려오는 전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말이다 그 간장 속에는 하늘이 담겨있고 하늘이 푸른 만큼이나 깊은 맛깔이 담겨있음은 가히 경이로울 일이 될 것이다. 시할머니, 또는 시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는 며느리- 종갓집의 며느리의 임무는 그만큼 엄숙했고 법도를 존중하는 마음이 이어지는 끈이 되어 한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는 습속(習俗)이라는데서 서양의 어떤 개념도 따라올 수 없는 우리의 전통이다. T,S.Elio의 <개인적 전통과 재능>이라는 짧은 논문에서 전통은 곧 새로움을 이어가는 줄기임을 암시했고 공자도 생이지지자에서 아비생이지자, 호고민이구자야라는 말로 전통의 묵수(墨守)는 단지 낡은 것의 명칭이 아니라 오늘을 새롭게 받아드리는 줄기의 개념으로 설파 했음은 현명한 사람이 깨닫는 개방된 사고의 소유자만이 느끼는 일일 것이다. 특히 이러한 치졸은 정치판에서 사상이 실종된 자들의 소행이라 한나라의 진로가 암담한 지경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좌파들이 정권을 잡자 본색을 드러내면서 이른바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으로 미운 놈 때려잡자는 행패가 자심(滋甚)했었다. 4대강 문제, 박근혜 탄핵을 하는가 하면 일종의 감옥에 보내는 일환으로 감사라는 명목을 빌려 우를 범하는 일이었으며 현재 윤 정부가 수사하고 있는 원전, 북송, 이재명 대표의 대리 변호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단임제 제도가 갖는 한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돌고 도는 정치가 지속 된다면 과연 앞서나가는 지구촌 정세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의 악순환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아침이 오면 저녁이 오고 밤이 지나면 다시 아침이 온다. 무슨일을 시행하면 사소한 잘못이 없으면 그는 신이지 이간이 아닌 것이다. 적폐 몰이의 주인공도 그런 길이 넓게 열린 사실을 모르는 우매한 정치 놀음을 하는 것이다. 메스컴의 위력이나 떼쓰기의 본보기가 지금도 여일한 수법인지는 믿어 보지만 아직은 글쎄올시다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정치란 처음도 정(正) 즉 바름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전통을 무시하면 곧바로 보복의 악순환이 자기로 돌아오는 부메랑의 화살이 가슴에 비극의 상징이 된다는 점이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무하는 어른이 되어야만 성공한 정부가 되는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곧 현실을 파묻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종부가 씨 간장을 소중히 여기는 것- 시집살이의 고달픔이 없었겠는가? 해도 그런 일들은 추억으로 삼고 좋은 것만을 간직하려는 가상한 마음이 전통의 줄기로 이어질 때 결국 존경의 이름이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부정하기보다 보존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질 때 현명한 수범(垂範)의 정치가 되는 것이지만 권력이 주구(走狗)가 될 때 이미 어긋난 길로 들어간 비극의 단초라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또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정치는 지금 희극을 보는 것인지 난센스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가치의 실종이 너무 심하다. 패당 끼리 놀음을 하는 형국이다. 이는 전통이 부재한 데서 나오는 천박한 사고의 전형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생각의 깊이가 없는 결론이 아니면 다른 답안이 도출될 수 없는 예일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전 정권의 비리들이 뉴스들의 전면을 덮고 있어 참으로 기가 막힐 정도이다. 이제 그런 일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정(正)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오래된 유물은 오래된 시간만큼 소중하고 진중한 보물이 된다는 자각은 최근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는 신호일 것이라 안도하며 정치가는 자기의 영혼을 팔아 권력을 쟁취하지만 결코 역사를 바꾸지 못하는 잠시 왔다 사라지는 하루살이 존재의 길을 선택한 우매한 자들이기 때문에 이름 석자는 이내 사라질 뿐이다. 전통이 없는 사회는 쉽게 무너진다고 했다. 왜 그런가 하면 기둥이 튼실하지 못하면 바람이나 태풍에 틀림없이 쓰러지는 운명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지 누군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통은 가치의 소중함이라는 강조가 오히려 부족하다. 정의가 왜곡될 때 사회의 파장은 오래 길게 간다. 바르게 정리하고 옳게 나아가는 길은 조금 늦더라도 결국은 빠른 지름길이라 한번 어긋나면 바로잡는 시간은 결국 국민의 몫으로 고통이 된다. 학문이 사회, 정치에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면 이미 다른 곳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처참한 상황에 해당 된다. 정치적인 암흑기는 이미 지난 일이다. 고구(考究)한 정치를 해주기를 기대할 뿐이로다. 분노는 안으로 삭여야 한다. 그래야 사물의 실상을 볼 수가 있으며 또 미래의 길이 보일 것이기 때문에 끝없는 자기 수련의 공부가 내공을 갖추지 않으면 자기 화염에 불타는 비극이 자기 것만이 아니라 타인에 전가되는 비극- 전통이 넘쳐나는 우리 사회다 현명한 지도자가 필요한 이유는 결국 국가의 미래와 연결될 것이기에 우리의 전통을 살려 더이상 이게 나라냐 하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2. 09. 29.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 이승섭시인 기흥 호수 공원 [이승섭 시평집 문학의 혼을 말하다.]
by 조숙현9기고문/나주경찰서 경위 황민애] 최근 남녀노소 모바일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메신저·메세지를 이용한 일명 메신저피싱이라 일컫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가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메신저 피싱은 예전에 문자가 활발하던 시절, 스미싱과 비슷한 형태로 모바일 앱 내에서 메신저를 주고 받을때 이루어지는 사기행위를 뜻하며 간편송금이 활발해진 때를 노려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장유명하고보편화된메신저앱은‘카카오톡’이다.카카오톡내에서프로필사진은엄마이고,“엄마나폰고장났어”라는메시지로시작하여핸드폰액정이깨져서,수리를받아야하는데비용이필요하다등의말로접근하여피해자들이돈을송금하고있는일이빈번하게발생하고있다. 그럼 범죄자들은 어떻게 피해자와의 인간관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안드로이드 운영 시스템을 사용하는 휴대전화들의 주소록이 연동되는 구글 주소록, 네이버 주속록 또눈 아이폰 운영 시스템의 아이클라우드에서 개인정보를 얻는다.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주소록을 작성할 때 기억하기 쉽도록 본인과의 관계를 적어 놓기 때문에 관계의 유추가 쉬워진다. 그러므로 메신져 피싱 범죄를 예방하는 첫걸음은 주소록이 보관되어 있는 구글, 네이버, 아이튠즈 등과 자주 접속하는 인터넷 사이트 혹은 애플리케이션의 아이디, 패스워드가 중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엄마 나 수업중이니 빨리 송금해주면 안돼?”라는 메시지가 오더라도 현혹되지 말고 전화통화나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카카오톡의 경우 메신져 피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해외 접속 사용자를 구별할수 있도록 사진 밑에 지구본 표시를 하고 있으며 새로 추가된 사용자와의 대화를 하기 위해서 별도의 사용자를 추가해야하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지만 사기범의 감언이설로 예방방법을 확인할수 없을 가능성이 있어 본인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게 가장 정확하고 안전한 예방법이다. 친한 지인, 오늘 아침까지 같이 있던 가족이라도 메신저를 이용해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본인에게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만약 이미 계좌로 돈을 송금했을 경우 지체없이 112에 신고한뒤 해당 은행에 지급정지를 신청하거나 각 은행의 ‘전자금융사기’ 예방시스템 ‘경찰청 사이버캅 앱’을 다운받아 적극 활용하는 방법도 메신저 피싱 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다. 메신저피싱 범죄의 피해자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으므로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과 노력으로 안전한 사이버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여주시 미술관 ‘아트뮤지엄 려’ 융합예술교육 운영 [금요저널] ‘한국사진작가협회 여주지부 회원전’ 전시가 열리고 있는 여주시 미술관 ‘아트뮤지엄 려’에서는 2022년 9월 24일 오후 3시, 미술과 음악을 함께 보고 들으며 곡의 해설까지도 들을 수 있는 ‘클래식 들려주는 미술관’ 행사가 개최된다. 이번 클래식 3중창은 공연 전마다 음악 코디네이터가 곡 설명을 해주는 콘서트 형태로 이뤄진다. 여주시 미술관 ‘아트뮤지엄 려’는 순수예술과 대중 간의 벽을 낮추고 순수예술에 대한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이번 문화공연은 미술관 개관 이후 진행된 세 번째 미술관 문화공연 프로젝트이다. 이번 공연을 맡은 앙상블 ‘같다’은 2022년 창단 10주년을 맞이해 여러 단체와 컨소시엄 해‘THE KATEUM’문화예술 그룹으로 발돋움 했다. 더 같다 오케스트라 그룹은 ‘같다’ 오케스트라와 ‘뚜 드르와’ 오페라단을 비롯해 ‘재즈콰르텟 엠즈’가 모여 하나의 그룹이 됐다. ‘더 같다 오케스트라 그룹’은 예술인의 창작과 연주 활동을 지원하고 대중에게는 다양한 문화적 향유를 선사하며 ‘문화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라는 다짐으로 첫걸음을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는 여주시 미술관 ‘아트뮤지엄 려’와 함께 ‘클래식 들려주는 미술관’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연주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뚜 드르와 오페라단’ 클래식 3중창 공연이 진행된다. 이번 공연은 ‘아트뮤지엄 려’ 홈페이지 및 유선전화를 통해 사전예약이 가능하며 미술관의 전시 및 공연 관람료는 모두 무료이다. 기나긴 코로나의 상황을 지나,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아름다운 그림과 선율이 함께 하는 미술관에서의 휴식은 지친 우리들 삶에 큰 위안이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장르가 모여 하나 되는 현대 예술의 흐름 속에서 대중들에게 한 단면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는 관계자의 바람을 전한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시를 만나러 가는 길엔 햇살이 유쾌하게 비추어도 좋고 비가 내려도 좋다. 왜 그런가 하면 시는 변화의 정서를 담는 그릇이기에 비가 오면 젖어 찾아오는 그리움이 있고, 햇살은 찬란한 미소가 가슴에 점령되어 희망의 노래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즐거움이거나 아니면 슬픔이거나 시는 늘 인간의 마음을 휘어잡는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기에 사랑을 믿고 또 찾아가는 길이 봄비가 된다. 그렇다고 모든 시가 사랑의 호감으로 포장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시적으로 완성된 이미지를 만날 때, 비로소 눈이 뜨여지고 속삭임이 들리고 희망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지고(至高)한 가치로 의미의 의상을 펄럭이는 향기에 묻히게 된다. 더구나 완성도 높은 시의 숲에 들어가면 황홀한 마음에서 하늘로 오르는 열락(悅樂)의 나래는 삶의 의미를 고상하게 그리고 높은 지향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꿈이 깃드는 것이라 할 것이다. 시는 꿈을 만드는 일이고 시인은 이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투척하여 언어의 조합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에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심지어 콤마 하나에도 열정의 땀이 들어 있을 때, 비로소 시는 눈을 뜨고 독자의 곁으로 다가서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김여선의 시는 사랑과 그리움이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그 본질의 중심에서 다른 정서의 숲을 이동하는 특성이 있다. 하나의 중심에서 다른 정서의 숲으로 가본다. 『2. 의도적이면 길이 보인다.』 ⑴ 사랑 혹은 그리움 인간의 삶이란 단순히 살아가는 것만을 한계로 설정할 수는 없다. 삶이라는 중핵(中核)에서 그 주변을 위호(衛護)하는 여러 요인들이 모아 져서 의식을 형성하고 이 의식에서 자기의 의도가 가미된 행동 양식이 도출된다. 왜 그런가 하면 이 행동 양식은 곧 개성이 될 수도 있고 생활을 이룩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개성이란 일종의 이름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중심의 의지가 특징일 때, 커다란 이미지가 누구는 “어떻다”라는 결과로 결정된다. 시인 김여선의 시에 그리움이나 사랑은 곧 그의 삶을 구성하는 인자(因子)중에서도 가장 중심을 이룩하는 이미지로 작동되는 시들이 선명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명확하게 정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즉 그리움이 먼저인가 아니면 사랑이 앞선 의미인가에 대한 정리- 물론 그리움이란 아련한 느낌이 점차 굳어질 때, 사랑은 그 뒤를 따라오는 순서가 당연한 질서의 개념이라는 편이 옳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리움의 요소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진실로 막연한 시작으로 사랑을 불러오는 계단을 점진적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랑과 그리움을 완전하게 분리하는 일은 턱도 없는 것이다. 때로 둘의 이미지는 뒤섞어서 앞서거니 뒤 서거니 하며 교차 감정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먼저 그리움은 첫째로 물로 젖어서 찾아온다. 비가 내리는 날에 풀잎은 잎을 벌려 온몸을 씻어내지만 그대는 낯선 그리움 하나 가슴에 몰고 온다. <그대> 시인마다 시적 대상을 의식으로 옮기는 방법이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동의 매개체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바람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 혹은 현재 등을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의식의 이동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보오들레오의 조응(照應)(Corres pondences), 발레리의 운율(melodies)나 랭보의 견자(Voyant)혹은 말라르메의 무한(lnfinite)등은 상징 시인의 의식 전달의 수단으로 작동되었다. 이렇듯 시인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막론하고 자기의 정신을 시로 옮기는 수단의 일환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물, 혹은 비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햇살이 밝은 날보다도 오히려 “비가 내리는 날”에 시적 감수성이 그대하는 미지의 대상에 젖어서 다가오는 의식 혹은 기다리는 개념이 교차하면서 시의 행로를 진행 시킨다. 비가 “오면” 풀립- 이는 시인의 상징을- 씻어내는 정화의 개념을 수반하면서 “그대는/낯선 그리움 하나 가슴에 몰고 온다”는 깨달음이 시작되는 것 같다. “오면”의 조건은 그대가 올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에 안타까움으로 기다리고 바라보는 마음의 애타는 면이 그리움의 가치와 등가(等價)를 형성하는 이미지가 성립되는 것이다. 시는 대상의 집중화에서 일체화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숨는다. 안개 속에 숨어도 그대는 보이고 은행나무 잎새에 숨어도 나직히 그대의 숨소리가 들린다. 새가 날지 않아도 호수는 그리움을 토해내고 달빛은 사각대는 바람 소리를 삼킨다. 숨는다 아무리 숨어도 그대가 보인다. <그대의 그리움> 중 사랑의 대상이 세상 어디에 숨어도 보이는 눈을 가진 시인의 의식- 그야말로 시를 위한 파파라치라는 명찰이 선명해 보인다. 어디에 숨어도 “그대” 미지의 대상- 사실 시로 바꾸거나 그리움의 연인으로 바꾸거나 시는 애매성(ambiguity)의 의상을 걸치는 것과 같은 뜻을 첨가하면 그대의 의미를 굳이 명료하게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안개” “은행나무 잎새” 등 세상 어디에 숨어도 찿아내는 형형한 눈을 가진 시인의 마음은 통찰의 시선을 레이저로 발산하는 것 같은 시인의 모습이 매우 진지하고 애달프다. 시인은 사물과 의식이 하나로 일체화를 이루는 작업을 위해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시인은 숲을 소요하면서 혹은 차를 마시면서 또는 음악을 들으며 등 시인의 의식이 하나로 합치하기 위한 일종의 방법 찾기라면 김여선의 의식은 집중화가 남다른 특징으로 그리움의 거처를 어디든 찾을 수 있는 자신감 때문에 그리움이 사랑으로 길을 만드는 방법론이 뚜렷하다. 그대 오고 있는가 비 뿌리는 강을 건너 안갯 속에서 그대, 발을 적시는가 오늘도 낮은 창가에서 그대를 기다렸지 <그대 오고 있는지> 역시 비와 시인의 사고에는 그리움의 길이 보인다. 이는 의식을 연결하는 일이 곧 시의 완성도와 밀접하다면 심리적인 집중의 초점이 명확해진다. 이처럼 그의 시는 물이 가장 중요한 메신저 역할을 하는 기능이 있다. 시인이 시를 창조하는 방법론은 하나의 방법이 아니다. 길은 길로 이어지면서 큰 길과 작은 길이 분기하듯이 목적을 위해 가는 방법이 한 가지 방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메신저의 본질은 “그대”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이 간절함에 모아들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백련/에서도 그리움은 절절하다. 지금 우리는 저 서글픈 영혼의 아픈 숨소리를 고이 간직한 채 찬 겨울 씨앗을 잉태하는 아픔을 되세기며 거센 비바람과 폭풍보다도 더 세차게 일고 있다. 먼 발치의 인내로 가녀린 시녀의 옷깃과도 같이 다시 사랑이라는 불씨 하나로 새롭게 테어나고 있다. <사랑의 불> 사랑은 달콤한 맛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선 신산(辛酸)하고 굴곡의 계곡을 지나거나, 천인단애(千仞斷崖)의 벼랑을 지나야 하고, 비바람 폭풍의 악착한 도정을 지나서 당도하는 어쩌면 슬픔의 정점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왜 그런 형극(荊棘)의 가시발길을 지나 사랑의 땅에 이르려고 열망하는가? 그 대답은 아주 간명하다. 고통의 심연을 지나 얻는 행복감 때문일 것이다. <3 육친의 정감>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은 다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궁극에서는 다른 것이다. 외면적인 행동반경이 아버지라면 어머니는 내면으로 따스함을 창출하는 뜻에서 다름이면서 같다는 말이 성립된다. 왜 그런가 하면 큰 울타리의 아버지와 그 울타리 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주어지는 분담의 사실을 깨달으면 사랑의 공간이 따스해진다. 시인의 그런 균형 감각이 깨달음으로 표시 되는 듯하다. 늦은 귀가에 아버지는 서둘러 군불을 지피고 아궁이에 거품 문 생가지의 아우성, 매운 연기에 먼저 눈물을 쏟고 굳은 살 가득한 손으로 어린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신다. 아버지 기침 소리 가끔 들리던 밤, 어느새 잠든 나를 안고 군불을 때던 아버지 <아버지 사랑> 어제는 비가 내렸죠 어머니가 심어 놓은신 꽃에게 눈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소중한 자식 어머니의 예쁜 꽃입니다. 난 알아요 우리를 보듬는 거칠어진 손마디가 우리에게 주는 값진 사랑리라는 것을 <어머니 사랑> 아버지 역할은 비교적 어머니보다 행동반경이 크고 어머니는 내면적으로 사랑으로 대한다. 다시 말해 시인은 아버지의 큰사랑 어머니의 작고 속깊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는 것을 시로 표현하고 시로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지가 곧 사랑의 방법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모든 존재는 그 자식을 위해 온갖 시련을 감내 하면서 사투를 벌인다. 짐승이나 인간이나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아픔이나 비극도 몸소 감내하는 이유는 단지 종족 보존의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자기를 위한 존재의 합리화가 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누구나 그렇듯 맹목일 수도 있고 그런일로 불을 때는 ‘아버지의 사랑’은 식솔을 위함이고 이는 긍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니면 그 이유를 결코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사랑은 은근하면서도 깊은 내면의 따스함이 어머니의 사랑에 닿고 있을 때 한 가정의 화목과 평온 행복은 지켜질 수 있을 것이기에 기둥으로서의 아버지 사랑은 너무도 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4. 날아오르는 꿈을 위해>에필로그- 시인은 그리움과 사랑을 모티브로 그의 시 정신을 현란하게 요리 하는 듯하다. 모든 시의 바탕은 이런 정신의 기저(基底)위에서 출발하고 또 귀환하는 것이다. 그리움이 사랑으로 가기도 하며 또 사랑이 그리움으로 내장된 의상을 걸치는 순환의 이미지가 포장될 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라 본다. 또한 시인의 시적 기법은 물의 의미를 통하여 이쪽과 저쪽으로 이동하는 매개체의 구실을 하기 때문에 비나 물이나 바람의 이미지는 그런 충실한 전달의 임무-일종의 배달과 같은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역시 삶의 깊은 원동력의 근거가 되고 이를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에너지 공급의 은혜를 잊지 않고 노래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만큼 정이 깊은 시적 감수성이 예리한 듯하다. 삶의 동력은 다이나믹하지만 심사(深思)한 내면에서는 애조의 마음이 때로는 여린 듯하다. 그의 시에 자유 정신은 중심축을 이루면서 시의 깃발을 휘날릴 때, 안식과 평화의 도달을 염원하는 정서적인 사랑의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며 정서를 대변하는 시인이라 느끼면서 에필로그 하련다. 2002. 09. 16.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 이승섭시인 [이승섭 주필 시집] [이승섭 칼럼집 {공정, 정의, 사색의 길}] [이승섭 시평집 {문학의 혼을 말하다}]
by 조숙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