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문화재] 안성정무공오정방고택] 정무공 오정방(1522∼1625), 천파공 오상(1614~1672), 충정공 오두인(1624∼1689) 등 해주 오씨의 이름난 학자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이 위치하는 덕봉마을은 사액서원인 덕봉서원과 오정방 고택, 종친의 무덤이 모여 있어 해주 오씨의 역사를 보여준다. 오정방의 손자인 오핵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고택은 덕봉리 입향조 오현경에 의해 1510년에 처음 지었으며, 1650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사랑채에 걸린 ‘퇴전당(退全堂)’이라는 현판은 오정방의 호를 1662년에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새긴 것이라고 한다. 이 가옥은 문간채가 전면에, 그 안쪽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한 건물로 이어져 있으며 사랑채 뒤쪽으로 사당이 별도의 담장을 두고 자리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이 가옥은 건립된 시기와 경위가 잘 기록돼 있으며, 16세기에 건립된 원래 모습이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더라도, 건물의 목재를 다듬은 상태가 좋으며, 안채의 툇마루와 부엌의 다락에 달아둔 창호에서 높은 수준의 목조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사랑채에 기둥의 모를 깎아 팔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용인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의 사랑채에서도 나타나는 방식으로 유사한 시대에 인근지역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안 쿠튀르: 세대를 이은 혁신(Korean Couture: Generations of Revolution)’ 전시장 입구. 1]경기도박물관 제공 한국 복식 특별전 ‘코리안 쿠튀르: 세대를 이은 혁신(Korean Couture: Generations of Revolution)’으로 지난 달 28일 개막한 이 전시는 한국 패션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조망한다. 전시는 한국의 패션을 선도한 현대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이상봉, 이진윤, 이청청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디자이너들의 창의력과 역사의 만남을 선보인다. 한국 ‘쿠튀르(고도의 재단·봉제 기술을 사용해 정교하게 만들어 낸 고급 의상)’의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면모를 함께 살펴보며 패션의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자리로, 관람객은 전통 복식과 현대 복식을 비교하며 한국 패션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코리안 쿠튀르: 세대를 이은 혁신(Korean Couture: Generations of Revolution)’ 전시 전경.2] 경기도박물관 제공 앞서 도박물관은 지난 3월까지 선보인 기증 복식 특별전 ‘오늘 뭐 입지?(OOTD: Outfit Of That Day)’에서 심연(沈演, 1587년~1646년)과 그의 부인 전주 이씨 묘에서 출토된 복식을 선보였다. 2017년 청송 심씨 사평공파 문중이 박물관에 기증한 이들 17세기 복식 유물은 400년 전 조선 사대부의 일상은 물론 그들의 사유 세계까지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특히 청송 심씨 사평공파 기증 유물은 수습 과정부터 도박물관의 전문 학예사가 참여한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과 윌리엄 그리스올드 클리블랜드 미술관장이 ‘경기도박물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해외문화교류 업무협약’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3] 경기도박물관 제공 특히 도박물관과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상호 교류를 촉진하고 대중을 위한 문화 및 교육 활동을 증진하기 위한 ‘경기도박물관-클리블랜드 미술관 해외문화교류 업무협약’을 했다. 업무협약은 ▲교류 전시 및 공동 기획 전시 ▲소장품 및 전시·교육 분야의 정보 교류 ▲직원 연수 및 상호 방문을 통한 인적교류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자연과 여유를 입고 있는 한국 패션의 고전과 현대 거장들의 걸작이 한국에서조차 한자리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며 “특별전이 기능에 치우친 서구 옷의 미래에 큰 영감을 던져주는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민족의 얼 북두칠성 천제 축전이 전남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 신촌리 국립나주박물관 옆 자미산 정상 부근 자미산 천지단에서 이현채 마한문화원장 주관으로 지난 25일 오후 3시부터(사)나주반남마한유적보존회, 국조삼성숭모회, 마고문화보전회, 한민족 둑기 보전회, 한민족 차례원 주최와 계묘년 자미산성 천문축전위원(한민족의 얼 북두칠성) 주관으로 반남면 김승희 계장, 정홍채 (사)나주반남마한유적보존회 이사장, 김길남 반남면 번영회장, 나간채 전 전남대 교수, 김후식 전 5.18 부상자회장, 임승렬 해남역사바로세우기 대표, 박인순, 김성대 시인 등 지역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자미산성 천문축전, 1] ▲제1부 천문축전 삼현육각연주, 초청 인사소개, 본행사 알림 타고, 천제고천문, 국민의례, 의례식, 천제봉축, 헌수 헌차 곡물 헌수, 삼현관, 전사, 축문, 축원무, 선녀 춤(온누리예술단) ▲제2부 자미산성 천문축전 학술대회 마한인의 천문사상 발제자 박동(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심미제국 허구성에 대한 고찰 임승렬(해남 역사바로세우기 회장) ▲제3부 자미산성 천문축전 우주별 이야기 천체, 축원무, 자미산성안내 및 별자리 설명(이현채), 차례(차미차회, 한민족차례원, 무등차연회, 한민족문명진흥원, 마한문화원), 각지에서 방문한 참석 인사 배웅으로 마무리했다. [자미산성 천문축전, 2] 이현채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올해로 17번째로 자미산성 천문축제를 통해서 한민족 마한역사의 실체가 한 가닥이라도 더 바르게 드러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찬란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반남고분군은 이곳이 여러 마한소국을 지배하던 통치자가 살고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서 깊은 유적(금동관) 유물 등이 속속드러나고 자미산성의 자미는 하늘의 가르키는 것으로 하늘궁 임금님만이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학술대회를 통해 밝혔다. [자미산성 천문축전 마한인의 천문사상 학술대회 3] 정홍채 이사장은 자미산 정상에서 사방을 보면 동쪽으로 무등산, 동남쪽으]로 국사봉 남쪽으로 월출산 서쪽으로 영산 하류 몽탄강 북쪽으로 금성산 자미산 서쪽의 석해뜰이 석해였다고 한다. 박동 교수는 마한은 삼국사기, 삼국지, 후한서, 백제본가, 온조왕 서기 9년에 마한이 수많은 연방국가로 구성된 나라인데 두 개의 성(원산성, 금현성)이 항복하여 멸망했다고 학술을 통해서 지도까지 펼치며, 자세하게 설명했다. 특히 2022년 고대마한 문화권 특별법이 국회에서 제정되고 공포되었다. 자미산성의 시종이 월지국으로 있었고 반남 자미산 왕도은 하늘 궁(북두칠성) 천제를 닮은 지형으로 영산강 지류를 관통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마한시대부터 후백제 견휜과 고려 태조 왕건과의 투쟁으로 삼별초 항몽 투쟁 등 한민족의 찬연하고 다양한 고대 역사문화를 간직하고 묵객이 문학을 즐기고 남긴 반양시사에서도 볼 수 있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구미시 도량동이 새봄을 맞아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고 새 단장을 한다. 도량동은 관내 통학로 일원에 야은 길재 선생과 연계해 조성된 조형물이 완공됨에 따라 묵은 쓰레기 정비, 마을정원 가꾸기 등을 실시하고 봄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도량동] 길재 선생님과 함께 온 도량동의 봄 1] 이번 경관개선 사업은 야은 길재 선생과 관련된 문화유산인 야은사(冶隱祠)와 충효당이 있는 도량동의 특징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도산초등학교와 충효당 구간에 조성되어 특히 학생들에게 지역 문화유산에 관한 좋은 교육 소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도량동] 길재 선생님과 함께 온 도량동의 봄 2] 이와 관련해 동에서는 경관개선 사업지 부근 묵은 쓰레기를 시청 담당 부서와 협의해 처리하고, 지난 3.13.(월)에는 자생단체 회원과 주민이 함께 참여해 동네 곳곳에 마련된 화단을 정비 후 봄꽃 3천여 포기를 심어 주민들이 봄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단장했다. [도량동] 길재 선생님과 함께 온 도량동의 봄 3] 박용자 동장은‘경관사업지를 잘 관리하고 홍보해 동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시키고 관내 학교와도 협력해 교육 아이템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by 노상균 대구.경북 취재본부장[김성문(사)가야연구언장] 김해 근처에서 가장 높고 수로왕릉 조성과 모은암, 백운암 창건 설화가 깃든 산은 무척산(無隻山)이다. 무척의 한자를 보면 짝이 없는 산으로 해석된다. 짝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말인지? 외롭다는 말인지? 무척산 정상은 신선봉으로 해발 702.5m이고 식산, 무착산, 무쌍산이라고도 불렀다.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에 있다.무척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몇 군데가 있다. 생철리에서 가는 길을 택했다. 무척산 입구 주차장에서 모은암까지는 약 700m이고, 모은암에서 천지는 약 1.7km, 천지에서 무척산 신선봉까지는 약 1.2km이나 모두가 가파른 길이다. 먼저 모은암에 갔다가 수로왕릉 조성에 대한 설화가 깃든 천지(天池)로 갔다. 모은암은 가락국 제2대 도왕이 어머니인 수로왕비의 은혜를 생각해서 창건했다는 설과 수로왕비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무척산 7부 능선에 있는 모은암으로 가는 길은 주차장에서 시작부터 시멘트 포장길이다. [김해 무척산 모은암1] 어느 정도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었다. 길옆 적당한 공간이 있어서 그 자리에 주차하고 시멘트 길로 걸었다. 시멘트 길이 끝나자 가파른 돌계단이다. 뒤에서 두 여인이 올라온다. 그들은 승복을 입어서 그런지 걸음걸이가 무척 가벼워 보인다. 조금 보폭을 같이 하다가 두 사람은 나를 앞질러 간다. 모은암은 시야에 들어오는데 가파른 돌계단 길을 약 200m는 더 올라가야 한다. 팔공산 서쪽에서 갓바위 올라가는 돌계단 길과 비슷하다. 계속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숨이 차서 돌계단 옆 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쉬고 있는 바위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보니 생철리가 바로 눈앞이고 너른 평야를 품고 있다. 평화로워 보인다. 산행은 땀이 마르도록 쉬면 안 될 것 같아 계속 올랐다. 염불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드디어 모은암 출입문 입구이다. [김해 무척산 천지2] 절벽은 모은암이 들어설 조그마한 자리를 내어 주었다. 절 뒤편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 앞에 모은암이 있다. 좁은 절 마당 안으로 들어서니 바로 왼쪽에 금색으로 쓴 극락전 현판이 눈에 띈다. 극락전 문을 살며시 열고 안에 있는 석조아미타여래좌상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잠시 후 부처를 바라보니 대좌까지 포함해서 높이가 약 60cm 정도로 아담하다. 아미타여래의 양쪽에는 협시보살 좌상이 있다. 아미타여래의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이다. 부처는 돌로 만들어졌는데 부드럽고 탄력있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몸은 작고 부처의 머리를 더 크게 제작해서 그런지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깨선과 다리가 균형이 맞아서 안정감이 있다. 부처를 바라보니 어린이와 같이 천진난만하고 맑은 정신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수만 가지 생각들이 한순간에 정리되어 버린다. 이 부처는 가부좌한 양발 위에 손등을 위로 오도록 하여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마치 마주 앉아 있는 듯하다. 부처의 설법을 직접 듣는 느낌이다. 한없는 친근감이 감돈다. 이 부처는 ‘김해 모은암석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이다. 극락전을 바라보아 바로 오른쪽에는 모은암과 청심당(淸心堂)이란 현판이 옆으로 나란히 있다. 절에서 사용하는 종무소와 요사채이다. 왼쪽에는 모음각이 있다. 모음각 안에는 범종이 들어 있고, 겉면에는 부모은중경을 새겼다. 잠시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생각하게 한다. 극락전 뒤편에는 내 머리가 닿을 정도의 조그마한 바위굴이 있다. 그 속의 제일 위쪽에 석가여래가 있고, 그 아래로 부처의 제자인 여러 존자가 각각 있다. 나도 잠시 부처의 제자가 되는 꿈을 꾼다. 극락전 바로 앞에는 사람이 편안히 누워 있는 형상으로 보이는 검은색의 바위가 있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아들에게 젖을 먹이는 형상처럼 보인다. 엄마의 젖가슴이 생각난다. 모은암에서 조금 내려와서 천지로 가는 길을 찾았다. 천지까지는 꽤 먼 거리로 가파른 계곡 길로 올라가야 한다. 천지는 해발 505m에 있다. 무척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연못이다. 수로왕이 붕어하자 지금 김해시 서상동의 왕릉이 있는 위치에 능을 만들기 위하여 땅을 파게 되었다. 그런데 능을 마련하기 위해 터를 파는데 물이 계속 솟아나게 되어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늙은 도사(道士)가 나타나서 김해 고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무척산에 연못을 파면 왕릉 자리의 물줄기가 끊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 연못 파는 것을 일러준 노인은 도사가 아니라 허황옥 공주를 수행한 신보(申輔)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보는 허황옥 공주가 가야 땅으로 올 때 같이 왔으며, 가락국 제2대 도왕의 왕비인 모정(慕貞)의 아버지이다. 도사의 이야기를 들은 가락국의 신하와 백성들은 무척산의 높은 곳에 연못을 팠다. 그러자 왕릉 자리에 물이 더 솟아나지 않아 무사히 수로왕의 장례를 마치게 되었다고 한다. 천지에 오르는 길옆에는 연리지인 부부 소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다. 두 소나무는 가지가 합쳐진 부분이 있어서 한 몸이 된 느낌이다. 신기하다. 연리지나 연리목을 보면 부부 간이나 남녀 간의 애정이 깊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천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12월 중순인데 천지 폭포에 얼음 기둥이 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무척산 정상 1.2km를 남겨두고 천지가 나타난다. 생각보다는 엄청 크다. 천지 가장자리에는 무척산 기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서쪽 가장자리에는 통천정(通天亭)도 있다. 하늘로 통하는 정자이다. 이 정자에서 올라온 길을 생각하며 내 마음이 하늘로 통할 수 있을지 잠시 마음을 모아본다. 천지는 모두 얼어서 빙판이다. 북쪽에 못을 막은 둑이 있다. 못 둑에서 천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물을 가두었으니 수로왕릉을 마련하는데 물이 안 나올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설을 뒷받침해 주는 느낌이다. 무척산에는 기묘한 바위들이 많고 경관도 좋다. 산의 높이에 비해 계곡이 깊고, 산세가 험하다. 천지를 뒤로하려니 아름다운 모습들에 아쉬움이 있으나 내려가야 할 길이 멀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수원화성 축성의 주역이면서수원부유수(현재의 수원특례시장)를 지낸 조심태(趙心泰, 1740~1799)의 조선시대 초상화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수원화성박물관 김세영 학예연구사는 오는 5월 개막 예정인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전시’ 관련 자료 조사 과정에서 조심태의 조선시대 초상화 2점을 최초로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정조 시대 무신인 조심태는 수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인물로, 정조대왕이 총애하던 신하 중 한 명이다. 조심태의 문중은 물론이고, 어디에서도 당시에 그린 초상화가 발견되지 않아 그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이가 많았다. 조심태 초상화를 찾는 것은 수원시의 숙원 중 하나였다. 조심태 초상화는 삼성 일가가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의 수집품 2만3300여 점 속에 있었다. [조심태 시복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은 이건희 컬렉션의 정리를 마치고 올해 1월부터 전국 박물관의 소장품 정보를 모아둔 e뮤지엄(http://www.emuseum.go.kr)에 1만여 건의 정보를 공개했고, 수원화성박물관 김세영 학예연구사는 매일 같이 접속하며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전시’에 선보일 자료를 검색했다. 3월 초 드디어 조심태의 초상화 2점을 발견했다. 초상화가 개별 유물 형태로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물의 초상화와 섞어 편집한 2개의 초상화첩에 1점씩 들어 있어 발견이 쉽지 않았다. 시복본(채색)은 ‘문신초상화첩’(건희 3599)에 시복본(초본)은 ‘문인초상일괄’(건희 3553)에 수록돼 있었다. 김세영 학예연구사는 시복본(채색) 오른쪽 상단에 ‘趙御將心泰(조어장심태)’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것을 보고 조심태의 초상화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장’은 ‘어영대장(御營大將)’의 준말이다. 조심태는 1794년 수원유수에 임명되기 전인 1792년 어영대장을 지낸 바 있어 조심태가 53세 때 그린 초상화로 추정된다. 채색한 시복본의 초본으로 추정되는 시복본에는 오른쪽 상단에 ‘大將趙心泰(대장조심태)’라는 글이 쓰여 있다. 조심태는 근엄한 얼굴에 눈매가 매서워 보는 이를 압도한다. 무인(武人) 출신답게 위풍당당한 분위기다. 김 연구사는 “얼굴의 곰보 자국, 수염의 묘사가 매우 섬세한 것으로 보아 뛰어난 솜씨의 궁중 화원이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의를 거쳐 조심태 초상화 2점을 5월 개최 예정인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전시’에 소개할 계획이다. [조심태 시복본(초본).] 정조대왕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던 조심태는 1789년 수원부사로 부임해 현륭원 조성과 수원신읍 건설에 큰 역할을 했고, 1794년 수원화성 축성 당시에는 감동당상(監董堂上)을 맡아 완공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정조대왕을 보좌한 수많은 명신(名臣) 중에서도 조심태는 국왕의 대업을 이루는 데에 있어 실질적인 업무를 맡아 진행한 핵심 인물이다. 수원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한 정조는 조심태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 모든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했고, 조심태는 정조의 지시를 현장에서 충실하게 수행했다. 조심태는 정조의 믿음에 보답하며 현륭원 조성, 수원부 읍치 이전, 신도시 수원 건설, 수원화성 축성 등 어려운 임무를 차질 없이 추진했다. 정조대왕이 조심태에게 보낸 편지 중 “경(조심태)처럼 뚱뚱한 사람이 어떻게 삼복더위를 견디겠는가. 실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이나 우습다”는 내용이 있는데, 정조와 조심태가 얼마나 가까운 관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수원화성박물관은 정조대왕(1752~1800) 탄신 270주년을 기념해 수원화성 축성과 신도시 수원 건설에 대한 정조의 생각이 담긴 편지를 번역한 수원화성박물관 역사자료총서9 「정조어찰첩-정조대왕이 수원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편지」(2022년 12월)를 발간하기도 했다. 「정조 사 조심태 어찰첩」(경기도유형문화재 제299호)는 5월에 개최하는 전시에서 볼 수 있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유인택)은 경기도와 고양특례시 그리고 서울특별시와 함께 서울 프레스센터에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사무실을 열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를 오가던 등재 TF팀은 프레스센터에 독립 사무실을 열고 ‘등재추진단‘으로 개편,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2023년 3월 8일 열린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개소식에는 서울시 김홍진 문화재관리과장, 경기도 홍성덕 문화유산과장, 고양시 서은원 문화예술과장, 경기문화재연구원 이지훈 원장이 참석했다. [▲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발족] 3개 유산이 하나의 단일 유산으로 세계유산 등재에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4개 기관이 하나로 뜻을 모아 등재추진단 사무실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 등재추진단 발족으로 세계유산의 가치를 밝히는 연구진과 함께 한자리에 모여 세계유산 등재추진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 세계유산 등재추진은 유산별로 각기 따로 추진되어 오던 것을 2021년 ‘통합등재추진 실무협의회‘에서 2022년 ‘통합등재 TF팀‘ 운영으로 구체화되고 2022년 12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됨으로써 점차 탄력을 받고 있다. 경기문화재연구원 이지훈 원장은 “여러 기관이 함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대한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은 물론 유산에 대한 보존관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의 기준에 부합하는 유산의 보존관리체계의 마련이야 말로 진정한 세계유산을 준비해가는 과정이다.”고 밝힘과 동시에 “현재 대한민국의 15개 세계유산에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이 세계유산 추가 등재에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김성문 원장] 2,000여 년 전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가락국의 왕도(王都)김해를 가게 되었다.김해 시가지 북쪽에 우뚝 솟은 분산성은 햇빛을 받으면 성벽이 유난히 빛난다.김해를 자주 갔지만,오늘은 기온이 쾌적하고 깨끗한 하늘에 뭉게 구름이 분산성으로 나의 발길을 유혹한다.동쪽에 있는‘김해가야테마파크’에서 분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평탄하다.정상까지 군데군데 시야가 탁 트인 곳도 장관이다.길이 약924m의 테뫼식 석축 산성인 분산성은 해발 약327m의 분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천연의 요새이다.가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김해를 지켜 온 파수꾼이다.성안에는 그 당시 생활했던 남과 북의 두 개 문 터와 동과 서편의 문 등 몇 개의 건물터도 남아있다. [김해 분산성, 촬영 서기 2019.10.08.(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성안에는 우물이 두 개가 있었고,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았다.”라고 한다.성안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많은 양의 유물이 발굴됐다.유물은 조상들의 생활을 추측할 수 있는 비밀 자원이다.성벽 받침돌 아랫부분에서는 청동기 시대 민무늬 토기와 삼국 시대 경질토기 및 연질토기가 상당량 수습됐다는 기록이 있다.산성 축성 이전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성안의 수습된 유물들은 대부분 고려,조선 시대 기와 조각과 호기심을 부르는 토기 조각들이다.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한 그 시대 토기들을 보면,조상들의 지혜로운 생활 모습이 그려진다. 성안에는 현존하는 사찰이 있다.가까이 가니 가락고찰 해은사(海恩寺)의 알림석이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해은사는 가락국을 건국한 수로왕비 허왕후가 세웠다고 전한다.가야로 무사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올 수 있도록 풍랑을 막아 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이 숨어 있는 이름이라 한다.사찰 안에는 영산전과 대왕전이 있다.영산전은 부처님을 모셨다.대왕전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로왕 내외분의 영정을 모신 특별한 전각이다.이곳 스님의 말씀에,“대왕전에 모신 영정은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대왕전 안에는 허왕후가 망산도에서 가져온 지름15cm정도의 영험 있는 봉돌이 있다.봉돌에 기도하면 남자는 재물복이 있고,여자는 득남한다고 한다.봉돌 앞에 자신도 모르게 손이 합장된다.산신각 입구에 남근을 상징하는 괴석은 자손을 번창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영산전 동쪽에 있는 타고봉에는 부처의 진신사리3과를 모신 적멸보궁도 있다.신자들이 오늘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분산 정상의 봉수대 뒤편에 거대한 바위에‘만장대(萬丈臺)’라는 글씨와 도장을 새긴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대원군이 쓴 친필과 도장에서 대원군의 숨결도 느껴진다.만장대는 분산성의 다른 이름이다.만장대는 조선 시대 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에서 비롯됐다.분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보이는 신어산은 해발631.1m로 가락국 시조 수로왕과 허왕후의 신화를 간직한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오랜 역사를 간직한 보물의 산이다. 분산 서쪽에는 수로왕비릉이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그 조금 남쪽에 있는 수로왕릉은 그 당시 가락국을 번성하게 한 것처럼 시가지를 안고 있다.분산 남서쪽 중심부에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국을 한 임호산이 우뚝하게 보인다.임호산은 마치 그 형상이 호랑이 머리 모양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역시 남서쪽 방향에 있는 봉황대공원이 우뚝하다. 분산 남쪽에는 동서로 쭉 뻗은 남해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보인다.남쪽 저 멀리 보이는 김해국제공항은 낙동강 하류의 삼각주에 있고 여러 비행기가 제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빌딩들이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보이는 김해 시가지는 가야 시대 때70%가 바다였다고 하니,이곳은 바다 위에 우두커니 높이 솟아 있는 큰 섬으로 연상된다. 풍경이 아름다운 분산성을 둘러보니 적(敵)이 가파른 길로 올라와 방어하는 자를 공격하기에는 난공불락이다.그 당시 적군과 아군의 치열한 전투 속의 함성이 귀청을 두드린다.분산성은 수많은 조상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신령스러운 곳이다.오늘날 김해를 있게 해준 분산성의 고마움과 조상들의 희로애락을 회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내려가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진다.발전된 김해 시가지가 점점 눈앞으로 다가온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김성문 원장] 가락국에는 불교가 일찍 들어왔다. 장유화상은 인도 아유타국 허황옥 공주가 가야 땅으로 올 때 같이 온 허보옥(許寶玉)으로 오빠이다. 보옥선인(寶玉仙人)이라고도 부른다. 부귀를 뜬구름 같이 보고 김해 불모산에 들어가 장유했다고 장유화상(長遊和尙)이라 부른다. 그의 흔적은 여러 곳에 남아 있다.장유화상은 가락국 수로왕의 일곱 왕자와 함께 하동 칠불사에 등장한다. 일곱 왕자는 외삼촌인 장유화상을 따라 수도하여 칠불사 운상원에서 성불하게 된다. 장유화상은 승려였으므로 가락국에 불교를 제일 처음 전한 승려가 된다.조선 초기 주세붕이 쓴 시문집인 『무릉잡고』 속에 서기 1544년에 쓴 「장유사 중창기」가 있다. [김해 장유사 촬영 서기 2020. 7. 5.] 그 속에 장유사를 처음 창건한 사람은 장유화상이라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에 간행한『김해읍지』「비판」 조에 보면, 서기 1708년에 명월사의 승려인 증원(證元)이 찬술했다는 「김해 명월사 사적비」에도 장유화상이 등장한다. 이 비문에서는 장유화상이 서역으로부터 불법을 전하여 가락국에 불교의 신봉이 융성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서기 1812년, 조선 순조 12년에 중수한 「은하사 취운루 중수기」에는 장유화상이 허왕후의 오빠로 기록되어 있고, 허왕후와 같이 왔다고 하였다. 은하사는 김해 신어산에 있다. 서기 1915년, 일제강점기 때 장유사에 건립한 「장유화상 기적비」도 있다.『삼국유사』「가락국기」 조에 보면, 수로왕이 수도를 정하면서,“이 땅은 십육 나한이 살 만한 곳”이라고 했다거나,수로왕은 만어산에 있는 독룡의 횡포를 막기 위해 부처님을 청해 설법을 들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가야 땅에는 남방불교가 일찍 들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런데 한국불교는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 6월에 중국 진(秦)나라 순도(順道)가 고구려에 불상과 불경을 전했다. 서기 384년, 백제 침류왕 원년 9월에는 호국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했다. 신라는 서기 527년, 신라 법흥왕 14년에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즉 고구려, 백제, 신라 순으로 북방불교가 전래하였다.남방불교는 서기 42년 수로왕부터 서기 532년 제10대 양왕까지 491년 동안 존재했고 계속 이어져 왔다. 꼭 규명되어야 할 가야 불교사이다.장유화상과 관련된 현재 사찰은 용지봉 장유사, 임호산 흥부암, 지리산 칠불사, 신어산 은하사, 동림사, 영구암, 불조사 등 여러 곳이다.장유화상을 기리기 위해 처음 지은 장유사는 왕후사 경내에 있었다. 장유화상을 기리기 위해 절을 창건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이다. 현재의 장유사는 김해시 불모산 용지봉 아래에 있다. 김해시 남서부에 있는 장유2동 포장된 대청 계곡 길을 약 4km 올라가면 장유사 주차장이 반긴다. 바로 커다란 일주문이 나오고 일주문 오른쪽 언덕에는 황금빛을 발산하는 커다란 지장보살이 있다. 지장보살은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인자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일주문은 절 마당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마당에는 온통 잔자갈로 깔려 있어 다른 절과는 색다른 느낌이다. 잔자갈은 한 발자국씩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뽀드득거린다. 성급한 내 마음이 저절로 속도가 느려진다. 대웅전을 바라보니 화려하고 웅장하다. 합장하고 기도하는 순간 저절로 나를 돌아보게 된다.대웅전 안 오른쪽에는 장유화상의 초상이 있다. 이역만리 가야 땅까지 와서 불도를 전하다니 고개가 숙어진다. 자기 몸을 불살라 남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성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대웅전 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장유화상 사리탑」과 「가락국사 장유화상 기적비」가 평온한 모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리탑 속에 있는 장유화상의 사리를 생각하니 불심의 정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장유사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내가 신선당에 온 느낌이다. 시야가 확 트여서 바다 같다. 내 가슴에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이다.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나 김해 시내에 있는 임호산으로 발길을 돌렸다.김해 시가지로 들어서니 서쪽 편에 우뚝 솟은 산이 보인다. 임호산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이 산의 형상이 호랑이 머리처럼 보인다. 자세히 보면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김해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불안함을 느껴 수로왕이 장유화상에게 시켜 그 입을 막아 주려고 흥부암을 지었다고 전한다. 흥부암은 김해를 번성하게 하는 절이라는 뜻이다.흥부암은 풍수 지리적으로 창건됐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기 1989년에 새로 지은 대웅전의 주춧돌이 호랑이 모양의 석상이다. 흥부암 자체가 호랑이 입을 막으려고 창건했는데 주춧돌도 호랑이 모양으로 했다니 호랑이를 꼼짝 못 하게 짓누르고 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호랑이 목덜미 위로 바쳐진 기둥이 호랑이를 한없이 짓누르고 있어 호랑이는 영원히 힘을 못 쓸 것 같다.흥부암은 오랫동안 폐사됐다가 서기 1700년에 중수했다. 그 후 서기 1997년에는 주지 혜운 스님에 의해 부설 불교대학도 운영하고 있다. 김해인의 중심 기도처이고 가야 불교문화의 대표적인 사찰이다.흥부암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한 ‘흥부암 석조 보살 좌상’이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돌로 만든 보살상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이 서서 협시하고 있다. 장유사나 흥부암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가슴을 확 트이게 하여 모든 번뇌가 달아난다. 흥부암에서는 김해 시가지가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시가지의 품 안에 포근히 안기는 기분으로 흥부암을 뒤로하면서 내려간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더불어민주당이용빈국회의원(광주광산구갑)은11월24일(목)오전9시국회소통관에서민족문제연구소,민족문학연구회,시민주권운동중점,한국작가회의와함께,동인문학상수상예정자에수상거부를촉구하는기자회견을재차가졌다.동인문학상은친일파김동인을기념하는상으로1955년제정돼1978년부터조선일보가운영하고있다.특히일본제국주의에희생된민족의아픔이나약자의아픔을돌아보는윤리의식을가진작가를수상후보자로삼아사회적으로논란이됐다. [친일파 기념 문학상 인동문학상 운영위, 제1회 인동문학상 “수상자 없음”으로 발표해] 김동인은일본의전쟁범죄를옹호하고제국주의를찬양한대표적친일파다.11월14일민족문제연구소,민족문학연구회,시민주권운동중점,더불어민주당이용빈의원실,한국작가회의가함께모여조해진작가에게동인문학상수상거부를요청했다.인동문학상은친일파기념상인동인문학상을폐지하기위해시민들이만든대안문학상이다.작품과작가의행위를모두평가한다는점에서기존문학상과는다른성격을띠고있다.인동忍冬이라는이름은658명의시민이참여한명칭공모전을통해결정됐다.동인의역어逆語이자저항의의미를담고있다.동인문학상수상거부여부가중요한조건이기때문에53번째동인문학상후보자로오른조해진작가의동인문학상수상여부에이목이집중된상태다.이용빈의원은“지난14일당시저희는올해제53회동인문학상의유일한후보인조해진소설가에게동인문학상수상을거절하고인동문학상을수상할것을요구했으나,지금까지도어떠한공식적회신을받지못했다”며,“이에제1회인동문학상수상자는없지만,부디조해진작가께서친일파기념상인동인문학상수상을거부하시길다시한번요청드린다.”고말했다. <기자회견문> 동인문학상은 친일파 기념상으로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문학상입니다. 1955년에 소설가 김동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입니다.김동인은 태평양전쟁에 젊은이들을 나가 죽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을 찬양한 대표적인 문인입니다. 2009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그의 친일 활동을 반민족행위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이러한 김동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은 올해로53주년을 맞았습니다.조선일보는 매해 친일파 기념문학상인 동인문학상 후보를 미리 공개하고 이들 중 하나에 상을 주고 있습니다.매해6명에서4명의 후보가 공개됩니다.저희는 이 후보들을 인동문학상 후보로 삼아 동인문학상 거부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고자 합니다.친일파 기념문학상을 거부했을 경우 인동문학상을 드릴 예정입니다.인동문학상은 시민들 손에 의해 이름이 정해지고 그 방향성이 정해졌습니다.열흘 전 우리는 바로 이곳에서 이상의 말로 동인문학상을 대체하는 새로운 문학상인 인동문학상의 제정을 발표하였습니다.우리는 기자회견 후 바로 제53회 동인문학상의 수상자로 예정된 조해진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내어 인동문학상 제정의 취지와 당신이 인동문학상의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였습니다.그리고22일까지 동인문학상 수상 거부 의사를 표명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하지만22일까지 답신은 없었습니다.우리의 의사가 조해진 작가에게 닿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우리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조해진 작가와 소통하였습니다.조해진 작가는 인동문학상의 제정 사실 등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우리가 조해진 작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를 소상히 밝힐 수는 없습니다.다만 ‘우리가 소통을 할 당시만 하더라도 조해진 작가는 동인문학상의 수상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조해진 작가는22일까지 동인문학상 수상 거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습니다.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형식에 따라 오늘 이 기자회견의 제목을 ‘수상자 없음’으로 정했습니다.현수막도 그리 제작하였습니다.제53회 동인문학상 수상식은 내일 오후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립니다.아직 조해진 작가에게는 하루의 생각할 시간이 더 남아 있습니다.우리는 그 하루에 희망을 걸어봅니다.조해진 작가에게 다시 한 번 요청합니다.친일파 기념상인 동인문학상을 거부해주십시오.제1회 인동문학상 수상자는 없습니다.잠정적으로 그렇습니다. 2022. 11. 24.민족문제연구소,민족문학연구회,시민주권운동중점,국회의원 이용빈,한국작가회의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금요저널] 안성은 조선시대 3대 시장 중 하나인 안성시장을 보유한 내륙 교통의 요충지로 안성~천안 간 왕복 열차가 하루 3회 운행됐던 지역이다. 현재는 철도가 폐선됐으나 아직도 미양역이 있던 지역은 ‘역전마을’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안성시 미양면 역전마을이 안성시시민활동통합지원단의 ‘2022년 동네 어르신과 함께, 안성맞춤 마을공동체 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역전마을은 주민 단합을 도모하고 살아있는 역사를 남기고자 이번 안성시시민활동통합지원단 공모사업을 통해 마을 유래비를 건립할 예정이다. 안성과 천안을 오갔던 학생들의 통학열차 추억과 안성장·천안장으로 봇짐장수들이 지역 생산물 등을 이고 진 채 기차를 이용했던 안성 철로의 역사를 기록하게 됐다. 여우석 역전마을 이장은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마을 유래비 건립 외에 금화규 꽃차 및 공동체밭 공동 경작하기도 진행하고 있다 수확물의 일부는 ‘마을공동체를 위한 작은 즐거움의 날’ 행사를 열어 불우이웃들과 함께 나눌 계획”이라며 “마을 주민들의 애향심 및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by 손창규 안성 취재본[금요저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오는 15일 오전 11시부터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 영릉에서 세종대왕 탄신 625돌을 기념하는 숭모제전을 개최한다. 숭모제전은 한글 창제를 비롯해 국방, 과학,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리는 행사이다. 세종대왕릉 정자각에서 거행되는 숭모제향은 초헌관의 분향과 헌작, 축관의 축문 낭독, 문화재청장의 대통령 명의 화환 헌화와 분향, 축사의 순서로 진행된다. 또한, 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세종대왕의 북방 영토 개척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 ‘세종, 우리 옛 땅을 되찾다’를 6월 26일까지 개최한다. 숭모제전이 열리는 15일이 휴일인 점을 고려해 행사장 내에 일반관람객의 참관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며 세종대왕의 탄신을 기리는 뜻으로 세종대왕 영릉과 효종대왕 영릉을 국민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앞으로도 세계유산인 영릉과 영릉을 온전히 보존하고 다양한 활용프로그램을 개발해 세종대왕의 위업을 선양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by 김주환 연합본부장